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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의 현장정치] 51% 국민이 반대한 강력한 이유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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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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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개헌 구상을 밝히며 대통령 4년 연임제와 함께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했었다. 결선투표제는 여러 명의 후보 중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1, 2위 후보가 다시 겨뤄서 승자를 뽑는 제도다. 이는 최종적으로 국민 과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탄생시켜 통합을 이루고, 정권의 대표성도 확보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87체제 헌법이 시행된 이후 과반 득표를 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51.6%)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30%대 후반~40%대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러니 2위로 낙선한 후보의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이 대통령의 결선투표 제안은 그걸 깨자는 것이지만 이번 대선에선 적용되지 않았다.

그 결과 6·3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1728만여 표를 얻어 득표율 49.42%를 기록했음에도 당선됐다. 과반 국민의 지지를 받는 데 실패한 셈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김문수·이준석·권영국 후보를 선택한 과반수 유권자로부터는 외면당했다. 더구나 이재명 후보를 찍은 유권자 중 상당수는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 진영의 실책 때문이란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반면 이 후보를 찍지 않은 유권자의 대다수는 그에게 깊은 불신을 품고 있음도 확인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4~5일 대선 투표자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2.3%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를 뽑았다고 응답한 투표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계엄심판·내란종식'이 27%로 단연 1위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서(7%), 정권교체를 위해서(7%), 국민의힘이 싫어서(5%)까지 포함하면 당선의 원동력은 우파 진영의 자책골이었음이 읽힌다. 물론 직무·행정능력(17%), 경제기대·경제정책(15%), 다른 후보보다 나아서(13%) 등도 투표 이유 상위권에 들었으나 압도적이진 않았다.

특히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답변에선 유권자의 분노가 묻어 있었다. 1위는 사법 리스크·범죄혐의(30%), 2위는 신뢰부족·거짓말·진실하지 않음(18%), 3위는 도덕성 부족·사리사욕(14%)이었다. 이 외에도 일부 유권자는 과거 언행·논란(6%), 후보가 싫어서(3%), 가정사·가족비리(3%)도 투표하지 않은 이유로 꼽았다.

결국 이재명 정권 탄생과 우파 정권 재창출 실패의 밑바탕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비상계엄 선포였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또 그런 이유로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으나 그의 도덕성과 사법적 논란에 대한 문제의식은 매우 뿌리가 깊다는 점도 알 수 있는 조사 결과였다. 한국갤럽은 "이재명 비(非)투표 이유로는 개인사 관련 지적이 많고, 김문수 비투표 이유에서는 소속 정당 문제 비중이 크다는 점이 대비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국민 절반이 갖는 불신을 해소하지 않으면 임기 내내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임기 초반에 신뢰를 상실하면 투표 때 분노해서 다른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그런데 당선된 이후 1주일 동안 이 대통령은 과연 그런 노력을 했을까.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취임 초반에 새로 등장한 여권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 대통령의 약속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이 대통령을 찍지 않은 유권자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아니라 49%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다수 여당으로 변신한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통령 취임 첫날에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전격 처리했다. 이 법안은 조희대 대법원이 '선거법 피고인 이재명'에게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선고한 뒤 본격 논의됐으므로 '이재명 방탄'과 연결돼 있다. 그런 법안을 여당으로 처지가 바뀐 뒤 처음 다룬 만큼 새 정부의 1호 법안이 '대통령 방탄'이냐는 말이 나올 법하다.

취임 둘째 날엔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3대 특검법(내란·김건희·해병대원)을 국회 본회의에서 일괄 통과시켰다. 세 개의 특검법은 파견 검사만 120명으로,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6배 규모에 해당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때는 이 특검법안들을 거부권 행사로 막았으나 지금은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게 뻔하다. 그러면 조만간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국민의힘 진영을 초토화할 초대형 수사가 진행된다. 우파 진영에서 '정치보복'이라고 부르는 '내란 종식' 회오리가 취임 초반부터 몰아닥칠 분위기다. 여기에다 피고인 대통령의 재판중단과 선거법 '면소' 판결을 위한 형사소송법, 선거법 개정안도 곧 국회에서 처리할 태세다. 대선 기간 줄곧 우려했던 일이 예상보다 더 빨리 현실화하고 있다. '피고인 대통령'의 재판중단을 둘러싼 혼란, 내란 종식을 명분으로 하는 정치보복, 거부권 행사 없는 무차별 법안 통과에 의한 국가 정체성 변화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돌연 문재인 전 대통령의 8년 전 취임사가 생각난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대통령의 취임사와 판박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도 말뿐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청와대가 주도해 각 부처에 '적폐청산TF'를 만들어 우파 진영을 겨냥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아울러 문 전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끊임없이 국민 갈라치기를 했다. 한일 무역 갈등 때 친일-반일 프레임을 설치한 게 대표적이다.

이재명 정부도 출범하자마자 문재인 정부를 답습하려 한다. 그러나 사법 정의가 살아 있고, 투표 때 강력하게 반대했던 51%의 국민이 깨어 있다면 충분히 멈춰 세울 수 있다. 이 대통령도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사법 정의가 죽지 않은 사실과 민심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을 것이다.

송국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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