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박물관은 보는 이에게 '기억해야 할 과거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여행'을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그 여행은 매우 특별한 인식과 체험을 제공한다. 이민자의 그늘진 삶과, 예감하지 않았던 환희가 섞인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인 이민은 1902년 12월, 인천항에서 121명이 미국 증기선 게릭호를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간 것이 시작이다. 그 후 1907년까지 7226명이 하와이로 떠났고, 1905년 1033명이 멕시코행 이민선으로 도착한 유카탄 반도에서도 '애니깽'의 이민사는 계속되었다.
'왜 사람들은 태어난 나라를 떠나는가,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세상의 모든 이민박물관이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제 나라를 떠나 살기로 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 질문을 비켜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박물관들이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아, 이민자의 가슴에 맺힌 미안함과 그리움에 큰 위로가 되었었다. 오늘 찾아가는 곳도 그 진심의 크기가 만만치 않았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2002년 요코하마에 일본해외이주자료관(JOMM)을 세웠다. 19세기 후반, 하와이를 포함해 남북 아메리카로 이주하는 많은 일본인들의 주요 출항 항구가 요코하마였다. 닛케이(日系)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민박물관인 셈이다. 일본인에게는 해외이주의 역사를 전하고, 일본에서 생활하는 일본계 외국인들에게는 다문화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일본인 해외이주의 역사는 1866년 해외 도항을 금지하는 쇄국령 이후 약 150년으로 기록된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중심으로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가 이루어졌고, 19세기 말 남미로 진출했다. 1924년 미국이 일본인의 입국을 금지하면서 많은 일본인이 남미로 옮겨갔고, 제2차 대전 전후로는 약 100만명이 이주했다. 현재 290만 이상의 일본인과 그 후손들이 세계 각지에 거주하고 있다.
전시관은 주제별로 꾸며져, 주로 중남미와 하와이를 포함한 북미 대륙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층층이 쌓인 낡은 이민가방과, 망망대해를 찍은 사진을 지나면 노동자의 고된 현장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전시 주제는 'Toil in the Soil(흙 속의 고군분투)'. 일본의 해외이주사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실에서 만난 한 일본계 외국인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이민을 와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중요한 삶의 선택이었음을 이제 알겠다'고 말했다. 이민자들이 직접 기증한 역사적인 유물은 물론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이민 1세와 후손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게 꾸며져, 특히 젊은 일본인들에게도 소중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내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민자의 가족생활'이라는 섹션이었다. 관람객들이 관심을 가진 건 다름 아닌 여러 음식이 함께 담겨있는 '모듬접시(믹스플레이트)'. 다양하고 이국적인 음식이 흰 쌀밥과 함께 담겨있는 '모듬접시'는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일본인 이민자 1세대가 점심시간에 다른 인종의 동료들과 음식을 교환하거나 함께 먹던 데서 유래했다. 일본인의 주식인 흰 쌀밥이 다른 음식들과 함께 접시에 담겨있는 모습은 자국문화와 다른 문화의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한편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한 경우에는 일본의 전통놀이인 카루타로 카드게임을 하면서 일본인 이민자들의 삶을 재미있게 배울 수도 있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다문화사회에 대한 일본의 솔루션이 그곳에 있었다.
'제 나라를 떠나는 것(emigration)'과 '다른 나라로 들어오는 것(immigration)'으로 구분되는 것이 이민(移民)인데, 대부분 '경험과 본질'에 주목하는 동양에서 '논리와 현상'에 주목하는 서양으로 '생각의 지도'를 옮겨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크로스컬처, 멀티컬처, 인터컬처. 그 어떤 문화든 곁가지라도 경험해 봤다면, 정체성이란 것은 평등한 문화의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에 깊이 공감했다.
이민(migration)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Diaspora)와 자주 비교된다. 정체성과 생존, 기억과 미래 사이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 속에서 절망을 딛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지혜를 배워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민을 이야기할 때, 세상 모든 이민의 이야기는 '성공신화'만 살아남게 되는 것 아닐까. 사람이 건너오고, 언어가 건너가고, 그것이 합쳐져 질곡의 시간을 지나며 새 터전에 뿌리내리게 되었지만, 그간의 그리움, 아쉬움, 외로움의 시간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 기억들은 '이민박물관'에 갇혀 다시 누군가에게서 시작될 시련과 희망의 이정표가 될 게 틀림없다. '또 하나의 삶의 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