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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핀테크 등과 같은 '비(非)은행권'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활짝 열어준다는 것이 해당 법안의 골자인 만큼, 스테이블코인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스테이블코인 영향력이 높아지면 은행의 자금 이탈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은행권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이 가시화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 컨소시엄에 얼마나 많은 은행들이 참여할지다. 컨소시엄을 위한 은행별 출자 규모도 아직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의 스테이블 법제화 방향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주도하는 CBDC(디지털 화폐) 시범 사업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일부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 참여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스테이블코인은 '1코인=1달러'처럼 미국 달러화와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해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고 실생활에서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어, 세계적으로 거래 규모가 폭증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들은 오픈블록체인·DID협회와 손잡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진 않았지만,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궤도에 오르면서 일부 은행권도 적극적으로 사업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은행권 기류가 달라진 배경은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로 은행의 자금 이탈 흐름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빅테크·핀테크 등 비은행권이 자체 플랫폼의 대중성을 활용해 시장을 선점할 경우 은행의 영향력도 약해질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직접적인 수익 사업은 아니다"면서도 "핀테크들이 자체 영향력을 기반으로 발행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면 은행권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지난달 금통위원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체재라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오는 23일 시중은행장들과 만찬을 갖는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스테이블코인 도입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은행을 비롯한 다른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우선 한국은행의 CBDC(프로젝트 한강) 시범 사업이 이달 말 마무리될 예정이다. 한은이 은행권에 CBDC 도입 협력을 적극 요청해온 데다, 은행권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도 초기 단계인 만큼 입장을 보류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의 구체적인 방향성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투자자산으로 봐야 하는지, 지급수단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입법 과정에서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흐름과 글로벌 도입 사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관련 기술 요건에 대한 내부 검토, 파트너십 가능성 탐색 등 다방면에서 모니터링 및 검토 중"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을 신사업의 기회로 바라보고 있지만 법제화의 방향에 따라 경쟁자 등장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어 법제화 방향성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