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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파 입장에서 좌절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좌파 진영의 손에 맡기기에는 그들의 정치 철학과 세계관, 현실 인식과 정책 노선에 너무 문제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파는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파의 패배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이다. 연속된 실패에는 반드시 구조적 원인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문제를 고치지 못하면 또다시 패배가 되풀이되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파는 어떤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거듭되는 패배에 직면하는 것일까? 필자는 현재 우파 위기의 본질을 '리더십의 결여'라고 진단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리더십 불임 현상이라고 본다. 정상적인 리더십을 만드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 현재 우파가 정치적 위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상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 번도 체계적인 정치를 해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적인 소환에 응해 대선에 나서 승리했다. 정치적인 훈련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런 한계는 임기 내내 우파 진영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곤 했다. 대통령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법치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 우파는 절대 검찰 출신을 영입하면 안된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그 부작용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윤 전 대통령이 그렇게 '별의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다른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할 기회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대선주자가 되지 못했을까?
애초에 우파 정당은 정치인을 자체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하는 데 더 중점을 두어왔다. 이것은 한국의 우파 정치에 내재한 역사적인 한계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즉, 한국의 우파는 박정희 대통령 이후 대중적인 조직 기반과 지지보다는 소수 엘리트 정치군인 중심으로 정치를 해왔다. 단기간에 산업화와 안보 강화를 이룩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무척 컸다. 필자가 '대한민국 우파는 건국도 하고 산업화도 했지만, 정치는 한 적이 없다. 우파의 정치는 청와대의 국회 파견 업무에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같은 기간에 좌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어라고 정치만 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엘리트 군인들이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정치에서 인재 양성은 정당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외부에서 그럴싸한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을 스카웃하는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 법조인이나 교수, 성공한 사업가 등 대중에게 먹혀들만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정치권 밖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정치적 리더십을 검증받은 것은 아니다. 정치군인들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 시대의 인재 스카웃 관행과 시스템은 그대로 남아 우파 정치의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를 좌우해왔다. 이런 문제를 누구도 시정하지 못한 것이 궁극적으로 우파 대통령의 연속 탄핵과 대선 패배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이 문제는 결국 우파 정당이 자체적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정치인이 성장해 올라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 현재의 밀실 공천 시스템을 완전히 척결하고 자격을 갖춘 당원들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면 정치인들이 자신의 메시지와 콘텐트를 당원들에게 제시해 지지를 받고 공직 선거 후보가 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말로 하는 전쟁'이고 '정치 리더십은 정치 콘텐트의 인격화'라는 점에서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 리더십은 정치 메시지와 콘텐트의 유통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 이권이 유통된 결과이다. 이런 리더십으로 평생 정치에만 매달려온 좌파들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원들이 공천권을 행사해야 정치인들이 지역구 활동을 강화한다. 지역민들을 만나 설득하고 당원으로 가입시키며 정치적으로 훈련시키게 된다. 현재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그런 지역구 활동보다 중앙당 실력자에게 눈도장 찍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아무리 지역 표밭을 열심히 일구어놔도 선거 때 닥쳐서 몇몇 사람들끼리 밀실에서 거래한 결과에 의해 하루아침에 공천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국의 골목길 조직이 다 민주당에 장악되고 우파 조직은 전멸 상태인 이유가 이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파가 간신히 승리해도 총선에서는 참패를 거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파는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좌파는 풀뿌리 시민단체의 조직과 활동에 근거를 둔 정치를 해왔다. 반면 우파는 사실상 당원이나 지지 대중과의 연결 고리가 전면 해체된 상태이다. 우파가 시민단체 중심의 좌파를 이기려면 제대로 된 정당 정치를 해야 한다. 그 정당 정치의 출발이 진성 당원 중심의 당원 공천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