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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진보 정부에서 부동산가격이 올라가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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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15. 17:51

김이석 논설고문
서울집값이 꿈틀거리자 정부가 부동산 상황을 점검하는 긴급회의를 열고 가용정책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집값이 상승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집값이 폭등한 경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보 정권은 재분배를 통한 소득격차 해소를 중시한다.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가격 격차 확대가 많은 국민에게 좌절감을 준다면, 소득과 자산의 고른 분배를 내세우는 진보 정권에서 오히려 부동산가격이 폭등한다는 것은 역설이다.

문재인 정부 때 각종 세제를 통한 부동산 규제를 강화했지만 오히려 서울의 '똑똑한 한 채' 수요를 촉발시켜 부동산가격을 폭등시켜 올려놓은 것을 국민들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진보 정권이 등장했으니 또다시 부동산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시 진보 정권이 등장했지만 세제를 통한 집값 규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가용한 모든 수단이란 무엇일까? 결국 집값이 오르는 지역의 부동산 구매를 어렵게 만드는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지구 추가 지정 등의 조치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집을 구매하기 위한 대출을 규제하는 조치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런 조치들은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쓰던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정책들이다. 아마도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조치들의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볼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서울집값이 폭등하는 현상과 관련된 또 다른 중요한 숨은 원인은 없는 것일까. 그런 숨은 원인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바로 진보 정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대규모로 발행하는 적자 국채의 누적 문제다.

그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각종 선심성 복지프로그램을 실행시키기 위해 진보 정부는 적자국채 발행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오히려 이것이 경제를 회복시키는 소위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진보 정부는 보수 정부에 비해 '나랏빚'이 커지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선전한다.

그런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최근의 사례가 바로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내놓았던 '호텔 경제학'이었다. 대선유세에서 이 후보는 "한 여행객이 호텔에 10만원의 예약금을 내면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가구점 외상값을 갚고, 가구점 주인은 치킨집에서 치킨을 사 먹는다. 치킨집 주인은 문방구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문방구 주인은 호텔에 빚을 갚는다"고 했다. "이후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고 10만원을 환불받아 떠나더라도 이 동네에 들어온 돈은 아무것도 없지만 돈이 돌았다. 이것이 경제"라고 했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이런 '호텔 경제학'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그는 정부가 거둔 세금보다 더 많이 빚을 내서 쓸수록 더 많은 돈이 돌 것이고 그만큼 경제활동을 더 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또 빚을 내서 쓰지 않을 때와는 달리 "돈이 돌았다"고 여기지 않을까.

적자국채를 더 많이 발행할수록 정부가 자금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끌어가기 때문에 이자율이 올라간다. 더 많은 국채를 팔기 위해 국채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국채가격의 하락은 시중 이자율의 상승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자율의 인상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현재수준보다 최소한 오르지 않게 억제하기 위해 발행된 국채를 사들이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되면 시중에는 더 많은 뭉칫돈이 돌아다니게 된다.

이렇게 풀려나간 뭉칫돈은 보통 자산시장으로 향한다. 뭉칫돈이 풀려나갔기에 전반적으로 물가가 올라간다. 그래서 실질가치를 확보하면서 자본이득까지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을 매입하는 것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이 뭉칫돈이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 가운데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더 붐을 일으키는 곳이 달라진다.

이재명 정부는 '주가 5000시대'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업들의 가치가 올라가서 그렇게 된다면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게 아니라 뭉칫돈을 주식시장으로 몰려가게 해서 주가에 거품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오히려 문제다. 닷컴 버블 때처럼 뭉칫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다. 시중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투자에 가용한 실제 저축이 더 많아지지 않았음에도 그런 저축이 존재한다는 착각이 발생해 경제를 교란시킨다. 이를 바로잡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일부 젊은이들은 소위 '영끌'을 하거나 또 다른 젊은이들은 월 급여에 비해서 천문학적인 가격의 주택 구입을 포기한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는 친구들을 금수저라고 부러워하면서 그렇지 못한 자기를 흙수저로 비하하며 앙심을 품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정부가 인구절벽을 막겠다며 아이를 낳아 기를 때 드는 비용들을 보조해 주겠다고 나서는데도 하나를 낳아서 키우기도 빡빡하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젊은이들이 결혼도 주저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진보 정부일수록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하고, 그렇게 해서 뭉칫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려들수록 부동산, 특히 서울부동산값은 오르는 경향이 있다. 이를 눈치 챈 부동산시장에서 벌써 가격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과연 이를 잘 다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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