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통상격동의 시대: 현장에서 길을 찾다] 이재명 정부의 대(對)미국 관세 협상전략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617010008058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5. 06. 17. 18:01

류예리
류예리 (경상국립대 지식재산융합학과 전담교수)
지난 9일과 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에는 양국의 경제통상 각료급 인사들이 총출동하여, 세계 최대 경제대국 간 협상의 면모를 과시했다. 미국 측에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대표단을 이끌었고, 중국 측에서는 허리펑 부총리, 왕원타오 상무부장, 리청강 국제무역 담당 대표가 참석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협상 태도를 보였다. 이번 협상에 참여한 고위급 인사들의 규모는 일본, 영국, 유럽연합(EU) 등이 미국과 협상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대규모 협상단을 꾸린 것은 고율 관세 정책으로 인해 심각해진 국내 정치·경제적 문제를 조기에 해소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런던 협상 종료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을 위한 위대한 승리"라고 자평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의 논조는 이와는 상당히 달랐다. '협상의 달인'으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실질적인 관세 협상전략을 갖고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오히려 미국이 중국에 끌려 다닌 협상으로 평가했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 공급을 6개월간 한시적으로 제공하기로 하며, 협상의 주도권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그동안 지식재산권 침해, 보조금 지급, 무역 불균형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중국이 보복조치를 언급하자 미국은 대중국 관세를 145%까지 인상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산 상품에 대해 1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로써 미·중 간 무역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100%를 넘는 관세를 부담하고 수출입을 지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체 소비재 매출에서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에 달한다. 4-5월까지만 해도 관세 발표 이전에 미리 들여온 물량으로 유통망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6월 들어 이 재고마저 바닥나면서 유통업계 전반이 마비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급기야 월마트 등 대형 유통업계가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은 결국 중국에 협상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측면에서 미국 관세 정책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협상력과 국제적 입지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한 전략적 검토 없이 관세 부과를 성급히 발표하고, 그 여파를 정책당국이 수습하느라 고전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관세의 다수가 발표 하루 이틀 사이에 변경되거나 유예됐다. 특히 수입영화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가 4시간 만에 아무런 설명 없이 철회한 사례는 즉흥적인 트럼프 관세정책의 극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만약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면 다수의 정책당국자들이 문책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5월 말부터 미국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18개국을 상대로 상호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100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 조직인 USTR이 18개 국가와 질서 있게 협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선트 재무장관의 언론 인터뷰를 보면 협상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들에 대해 7월 8일 이후에는 관세 부과 유예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점은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미국 관세정책의 성공 여부는 중국과의 협상 결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제네바와 런던 협상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미 미국은 수세에 몰리고 있다. 세계 상품시장에서의 영향력과 희토류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중국을 일방적으로 압박해 물러서게 하는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를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중국은 사마륨, 가돌리늄, 스칸듐, 루테튬, 테르븀, 이트륨, 디스프로슘 등 7종의 희토류를 수출통제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집중 관리하는 총 17종의 희토류 중 7종에 대한 규제만으로도 중국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상당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마륨은 미국의 첨단 전투기 제작에 필수적이며, 강력한 자석 원료인 디스프로슘은 전기차와 풍력 발전용 모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소재다.

중국의 협상전략도 한층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이 제3국을 통한 중국산 제품의 대미 우회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수출통제 정책을 강화하는 데 맞서 중국 역시 자국산 희토류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희토류 직접 수출은 물론이고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하는 제3국의 미국 우회수출도 금지시켰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17종 희토류 전체에 대한 무기화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도 크다. 희토류 정제기술의 난이도, 높은 환경부담, 광산소유권 문제 등으로 인해 중국은 당분간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절대 강자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점이 미·중 패권 갈등 시대에 미국이 중국에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주 우리나라는 미국과 본격적인 관세 실무협상을 시작한다.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우리나라는 새로운 협상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이유로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정책은 속도 조절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대신 수출통제는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미국은 희토류 문제로 중국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유화책을 유지하겠지만, 동맹국들에는 미국 수준의 수출통제와 기술안보를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현재의 경제 안보 체제를 면밀히 점검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양자적으로 진행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EU 등 주요국의 협상 추이를 참고해 최선의 협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의 협상에서는 미국이 열세에 놓여 있고, 전반적인 협상 부진으로 미 당국이 초조해 있다. 협상에서 미국이 우리나라를 험하게 대할 수 있지만, 이 이면에 작용하는 미국의 상황을 읽어야 한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상정책 당국은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미국과의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예리 경상국립대 지식재산융합학과 전담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