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한국 개인전 개최
빛·공간·색 지각경험 극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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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두 작가 모두 올여름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한국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터렐의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은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맥콜의 개인전 'Anthony McCall: Works 1972-2020'은 북촌 푸투라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터렐은 17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맥콜은 이번 전시가 아시아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다.
"우리는 다른 것을 드러내는 용도로 빛을 사용하지만 저는 빛 자체를 드러내고 싶습니다." 터렐의 이 말은 그의 예술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60년대부터 일관되게 빛과 공간을 이용해 인간의 지각을 바꾸는 것에 관심을 둬온 그는 단순히 빛을 다루는 것을 넘어 빛을 통해 우리의 인식 체계 자체를 성찰하게 만든다.
대학에서 인지심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18세에 조종사 자격증을 딴 그의 독특한 이력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퀘이커교도로서의 명상적 성향과 조종사로서 경험한 공간에 대한 감각은 그의 대표작인 '스카이스페이스'와 '간츠펠트' 시리즈의 근간이 되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준 "네 안의 빛을 찾아라"는 말은 그의 평생에 걸친 빛 탐구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터렐의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때로 혼란스럽다. 단지 빛이 변화했을 뿐인데 주변의 공간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관람객들도 있다. 하지만 터렐은 이러한 혼란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작품 안에서 느끼는 혼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지를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현실을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그의 작품은 인식론적 실험실인 셈이다.
"빛을 조각하는 작가"로 불리는 앤서니 맥콜은 터렐과는 다른 방식으로 빛에 접근한다. 그의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는 빛으로 입체적인 조각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시도다. 하지만 맥콜이 처음부터 빛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 그의 탐구는 우연히 빛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영화가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 퍼포먼스 그 자체가 되는 방식"을 고민하던 그는 관객이 스크린을 등진 채 프로젝터에서 투사되는 빛을 보며 감상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여기서 빛이 단순히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입체 형태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그의 예술적 전환점이었다.
맥콜의 작품은 시간성을 품고 있다. 그의 최신작 '스카이라이트'는 빛이 선 드로잉 형태로 조금씩 움직이며 천둥소리, 빗소리 등의 소리와 안개 효과가 더해져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살아있는 조각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이 빛의 조각 속에 들어가 만져질 것 같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두 작가의 작업 여정은 기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터렐은 1967년 빛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시작해 네온 조명과 전기 저항 소자를 사용하다가 현재는 LED와 컴퓨터를 통해 더욱 정교한 작업을 구현하고 있다.
맥콜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197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시 미술계가 그의 작업을 받아들이지 않아 20여 년간 작업을 중단했다가 2000년대 기술 발전과 함께 작업을 재개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일반적인 미술관들이 이런 유형의 작품을 거의 전시하지 않았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터렐과 맥콜의 작업은 빛이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철학적, 미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터렐이 빛을 통해 인식의 한계를 탐구한다면, 맥콜은 빛으로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두 작가 모두 관객을 수동적 관찰자가 아닌 능동적 참여자로 만들며, 예술 작품 안에서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을 얻게 한다. 터렐의 개인전은 오는 9월 27일까지, 맥콜 전시는 9월 7일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