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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상처와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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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22. 18:01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도자기 파편, 에폭시, 금박, 2017.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연작은 대영박물관, 보스턴미술관, 프린스턴대학교 미술관 등 국내외 다수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상처를 드러내거나 아름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전통 도예 장인의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 결과물 중 7할 이상이 폐기되는 이유는 작은 티끌 등과 같은 오점 때문인데, 완전한 아름다움을 꿈꾸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일궈온 장인의 도자기에서 티끌은 자꾸만 눈에 띄는 상처와도 같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름다움'에 관한 우리의 관념은 오점, 틈, 균열이 없는 '완전함'에 있었다. 그런데 오점이나 상처를 일부러 드러내어 '아름다운'경우도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02년부터 제작된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연작은 도자기 장인이 실패작이라고 깨 버린 도자기 파편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언젠가 도자기 장인의 작업장을 방문했을 때 계속해서 도자기를 깨뜨리는 장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티끌만큼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장인이 실패작이라고 판단한 도자기들이었다. 깨버린 도자기 파편들이 작가의 눈에 띄었다. 장인의 허락을 받고, 햇빛 아래 반짝이던 깨진 파편을 잔뜩 담아 작업실로 가져왔다. 파편을 만지작거리다 퍼즐처럼 아귀가 맞는 두 쪽의 조각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때부터 파편들을 이어 붙여 금(crack)을 금(gold)으로 덮은 작업 '번역된 도자기'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이 연작은 도자기로 유명한 지역들, 즉 이천·여주·강진·문경, 그리고 북한 등의 도자 파편들을 수집하여 사용하고 있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생산되어 깨지고 조각나 해체된 도자 파편들은 작가의 집중된 수집과 접합에 의해 혼성적이고 독특한 지질학적, 생물학적 형태를 지닌 새로운 오브제로 태어난다. 기원이 달라 저마다의 색채, 형태, 문양을 가진 깨진 파편들은 우리의 다양한 과거와 현재의 파편이자 절망과 단절, 고통과 파괴를 상징하는 균열의 결과다. 금박(gold) 에폭시로 봉합된 균열(crack)은 깨졌던 상처를 감추지 않고 다시 탄생한 생명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일본의 오래된 도자기 수리방식인 긴츠키(Kintsugi)와 같다. 금박을 뜻하는 긴츠키는 단순한 복원 목적도 있지만 깨진 흔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결함이나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 와비사비(侘び寂び, wabi-sabi)와 연관된다고 한다. 프리어 미술관과 스미소니언 아서 M. 새클러 갤러리의 세라믹 부문 큐레이터 루이스 코트(Loise Cort)에 따르면, 긴츠키와 와비사비에 관한 연관 기록이나 문헌적 증거는 없지만, "파손이라는 실제적인 사실과 금, 은 등 매우 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수리를 강조하는 것 사이의 대조는 와비가 가리키는 보편적인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깨진 도자기는 나쁜 운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수경은 파괴된 폐허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용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실패작이라고 깨 버린 도자기 파편들을 주워 모아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일은 나쁜 운을 무릅쓰는 일이고 관습에의 저항일 수 있다. 깨진 도자기의 상처와 파괴의 사태들을 수선하고 접합하여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적 전회로'번역된' 도자기! 금(crack)이 간 곳에 금(gold)을 붙이는 대조, 상처가 아름다운 역설!

내게도 이사를 할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는 깨진 그릇 두 점이 있다. 생전에 엄마가 아끼시던 접시 하나와 8년 전 지인에게 건네받은 데미안 허스트의 드로잉이 그려진 머그컵 하나가 그것이다. 두 그릇 모두 나의 실수로 깨졌다. 그럼에도 엄마와 지인과의 추억, 애틋한 마음 때문에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나쁜 운이 올 수도 있다는 옛말이 자꾸 떠올라 벌써 여러 해를 수납장 깊숙이 보이지 않게 보관 중이다. 더러는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수납장 속 그릇을 버려야 하나 가끔 고민을 한다. 상처를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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