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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대통령의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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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23. 17:58

이경욱 실장님-웹용
논설심의실장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항상 옳다. 직업은 생업(生業)이기에 그렇다. 생업에 충실할 때 삶의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도를 찾게 된다. 평범한 국민은 생업이 없으면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생업인가. 외형상 그렇다. 대통령직(職)이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한 자리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생업이 아닌 것은 절대 아니다.

생업은 영위하면 월급이 나온다. 수당도 받을 수 있다. 생업은 반드시 끝이 있다. 그만둬야 하는 시점이 있다는 뜻이다. 정년이거나 자발적 퇴직, 아니면 구조조정이 그 끝이다. 대통령도 임기 5년이면 물러나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과 직장인의 생업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임기 중 월급을 받지 않는다면 그건 생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생업과 평범한 직장인의 생업은 전적으로 다른가. 그렇지 않다. 비록 대통령 생업의 대상이 온 국민과 다른 나라라고 해서 직장인의 생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직이라는 게 직장인의 생업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도 옳다. 생업이 주는 중압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동일하다.

대통령의 생업과 평범한 직장인 생업의 중압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국군 통수권자의 역할을 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한편 집권당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 여론을 늘 살펴야 하는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맞다. 밤을 낮 삼아 보고서를 들여다봐야 한다. 규모가 작은 기업 직장인의 중압감이 이보다 작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작으면 작은 대로 신경 쓸 게 한두 가지 아니다.

계엄선포에 따른 대통령 파면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결정했다.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이 들어갔다. 3년간 사용된 용산 대통령실은 이제 청와대로 이전된다. 정부가 용산으로 옮겨간 대통령실을 청와대로 이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청와대 이전을 위한 예비비 259억원을 이미 확보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집무를 수행하면 외부인 관람은 중단된다. 청와대 관람은 오는 7월부터 단계적으로 제한되고, 8월부터 복귀 완료 시까지는 전면 중단된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전국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청와대 경내 지하 벙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직원 안내에 따라 어디론가 한참 걸었다. 상황실은 지하에 있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있었다. 전시 상황 시 대통령이 이곳으로 긴급 이동해 국정을 지휘한다는 설명도 들었다. 이 상황실은 윤석열 정부 때 용산으로 이전한 대통령실 지근거리에 이동 설치됐다. 상황실 이전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상황실은 대통령이 국가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다. 그래서 대통령 집무실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보안도 철저해야 한다. 외부로부터의 공격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청와대를 방문했다. 본관은 그 규모가 엄청났다. 집무실을 비롯해 대통령 부인 접견실 등 관람 가능한 곳을 다 돌아다녀 봤다. 그때 느꼈다. 대통령이나 비서들이 이 대규모 건물 안을 분주히 다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통령실이 용산에 있든, 청와대에 있든 대통령은 단 한 순간이라도 대통령실과 떨어질 수 없다. 수많은 대통령실 직원들이 눈과 귀가 돼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고 숱한 현안들을 정리해 각 부처 등에 지시해야 한다. 용산의 대통령실은 한 건물 안에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이 한꺼번에 있는 구조여서 대통령의 동선이 상대적으로 짧다. 하지만 청와대로 들어가게 되면 대통령의 동선은 필연적으로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직장인들이 주로 일정한 장소의 직장을 일터로 삼고 생업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라 안팎 발길이 닿는 곳 모두가 일터다. 청와대에 있거나, 저잣거리에 있거나, 해외에 있거나, 휴가를 가거나 대통령이 가는 곳은 모두 일터다.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정책을 수립해 가고 집행을 하는 그 모든 곳이 그의 일터다. 그 일터에서 꼬박 5년간 우리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직이다.

대통령의 일터는 대통령 스스로 늘려가는 게 국가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민심을 청취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국가 정책을 설명하는 대신 철통 경비 속에 갇힌 대통령실만을 일터 삼아 머문다면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게 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청와대만을 일터로 삼을 경우 차단된 민심이나 여과 장치를 통해 걸러진 민심, 즉 오류 가능성을 담은 민심을 청취하게 된다. 일터를 무한대로 늘려가는 대통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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