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보자.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가 질문한 관세협상에 대해 "솔직히 기존 우방국들이 적대국들보다 더 나빴다"며 동맹과의 무역관계에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냈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듯 미 정부는 한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에 서한을 보내 엄청난 관세율을 통보하고 파격적인 대미 투자와 시장 개방을 이끌어 냈다. 반면에 연평균 3000억 달러가 넘는 최대 무역흑자국으로 애초부터 으르렁거렸던 중국에 대해선 중국이 강력한 맞불작전으로 나오자, 깜짝 유화책으로 돌아서 본래 참뜻이 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럼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해선 어떤 제스처였을까? 그는 지난달 중순 '50일 시한'을 내걸며 '휴전이 없으면 100% 관세를 부과하고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오히려 최근 알래스카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영공에 들어온 푸틴 전용기를 4대의 스텔스 전투기로 호위토록 하고 붉은 카펫을 깔아주며 극진히 환대하는 등 강자에겐 오히려 융숭하게 대접했다. 특히 트럼프는 기자회견장에서 손님으로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먼저 브리핑하라고 권하는 등 외교 관례를 벗어나는 매우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푸틴에게 좋은 날.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에게 동등한 대우를 받는 화면을 러시아 국민에게 자랑할 기회를 얻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필자가 인공지능(AI)을 통해 미·러 정상회담의 우열을 판독한 결과 '트럼프가 푸틴에게 주도권을 양보했다. 원래 1:1 단독회담을 하려던 계획에서 장관들이 배석하는 3:3 확대회담으로 바꾸고, 대통령 전용차 동승 같은 예우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종전(終戰) 평화구상을 밝힌 점에서 푸틴이 이긴 것'으로 진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진짜 스타일, 진면목은 무엇인가. 세간에서 평가하듯 '돌출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설득력이 있지만, 무엇보다 '힘과 지배력'이란 관점에서 판단하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강자에 너그럽고 약자엔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식의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또한 개인적인 친분이나 상대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조치를 달리하는 등 갈지(之)자 행보도 한다. 실제로 그는 내란 혐의로 기소된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다면서 브라질에 50%의 상호관세를 통보했다. 이는 현직인 룰라 대통령의 "미국이 50%를 때리면 우리도 50%. 협상이 실패하면 상호주의에 따라 보복할 것"이라는 즉각적인 반발을 가져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기본 정책 방향에 대해 '안보는 회비를 내고, 무역도 관세를 물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즉 세계 경찰국가인 미국의 빚이 많아 더 이상 과다한 국방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고 제조업을 위시한 전통 경제시스템이 무너졌기에 '아메리카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MAGA)' 무역 상대국에 대한 으름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관세협상 타결에서 '조선업 협력' 이슈가 어느 정도 지렛대로 먹힌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의 저서 '경제학 레시피'에서 '국제 무역의 불균형은 과거에도, 지금도 존재한다. 강한 나라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정하는 초기 협상단계에서부터 유리하게 틀을 짰고, 경쟁력 있는 제조업 부문에서 개도국들에 비해 상대적인 특혜를 누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은 점차 외국에서 들여오는 값싼 물품에 취해 제조업을 소홀히 하며 경제기반이 부실해졌고, 결국 무역적자 등에 대한 비상수단으로 고강도 관세정책을 펴며 또다시 국제 질서를 거스른 신세가 됐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매사에 지나치면 훗날 악평을 듣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현재 매스컴을 통해 비춰지는 트럼프의 미소가 과연 상대방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웃음일지, 아니면 눈물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