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얼 퍼거슨 "美, 지난해 한도 넘어서 위기 봉착"
- 한국도 국채 이자비용이 국방비의 60% 웃돌 가능성
- AI투자 성공으로 '생산성 기적' 이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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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후인 1767년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애덤 퍼거슨은 '시민사회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에서 이런 역사적 사례를 들어 "과도한 공공부채는 국가몰락의 원인"이라고 경고했다. 애덤 퍼거슨은 같은 시대에 활동하며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렸던 애덤 스미스의 상업정신을 문명·문화로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학자다. 그는 재정적자 증가로 인해 국방비 지출이 줄어들고, 이는 군사적 약화와 제국의 쇠퇴로 이어진다는 역사적 통찰을 제시했다. 과거 로마제국, 스페인 제국, 대영제국, 소련 등이 바로 재정적자 급증과 군사비 감소 탓에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자신과 성이 같은 애덤 퍼거슨의 경고를 '퍼거슨의 법칙'으로 재정립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국방비보다 국채이자 등 부채상환에 더 많은 돈을 쓰는 나라는 결국 강대국의 지위를 잃는다'는 것이다. 부채 상환액이 국방비를 초과하는 시점에 도달하면 강대국의 지정학적 장악력을 약화시켜 군사적 도전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국가부채가 과도한 것인가'를 놓고 논쟁해 왔는데 니얼 퍼거슨이 중요한 잣대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현존 세계 최고 패권국인 미국이 바로 이런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미국은 거의 1세기 만에 처음으로 지난 2024년 국가부채 이자지급액이 국방비 지출액을 추월했다. 미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국방비 지출은 1조1070억 달러였는데, 연방정부의 국채이자 지급액은 사상최고인 1조1240억 달러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 순이자 지급액 비율은 3.1%로 국방비 지출액 2.9%를 넘어섰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50년 국채이자 지급액이 GDP 대비 5%선까지 불어나는 반면 국방비는 오히려 2.5%선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니얼 퍼거슨은 미국이 이런 위기를 타개하려면 방만한 복지프로그램을 급진적으로 개혁하거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생산성 기적을 이루는 길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복지예산의 대대적 감축은 금세기 어느 미국 대통령도 달성하지 못한 만큼 기대를 걸 곳은 사실상 AI 투자뿐이라고 역설했다. 지난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1조 달러의 지출을 삭감하고, 관세 수입을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우방국의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5%까지 늘리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맹국 쥐어짜기와 자국 물가인상을 촉발할 수 있는 관세카드로 재정적자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는 솔직히 미지수다.
'퍼거슨의 법칙'은 우리나라에도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채 이자비용은 내년 36조4000억원으로 국방예산 지출액 66조3000억원 대비 54.5% 수준이다. 겉으로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아직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증가속도를 놓고 보면 결코 안심할 수준이 못 된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올해 1273조원(본예산 기준)에서 내년 1415조원, 2029년에는 1789조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정부 5년 동안 해마다 122조원씩 증가해 지금까지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가장 빨랐던 문재인 정부(연평균 81조원 증가)보다 더 가파르다. 세수부족 탓에 국가 총수입 증가속도는 더딘데, 확장재정으로 총지출은 해마다 4~8.1% 증액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채 이자비용도 2029년 44조원으로 총지출액의 5%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압박 등으로 국방예산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방예산 대비 국채이자 비율은 단기적으로 60%를 웃돌 가능성이 있다.
니얼 퍼거슨이 경고한 미국 국채의 4가지 위험성 가운데 우리나라도 똑같이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외국 투자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국채 실질금리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006년 1.6%에 불과했던 외국인 국채 보유비중이 올 7월 말 23.9%까지 높아졌다. 외국인 비중이 높으면 외환위기와 같은 외풍 때 그만큼 충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적자재정으로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금리 인상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곧바로 국채이자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국채누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AI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로 전 산업에 AI를 성공적으로 접목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것만이 살길이다. 그런 측면에서 내년 AI와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증액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또 정부는 향후 5년간 100조원 규모의 민관 AI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했는데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조선·자동차·반도체·2차전지·원자력·방산 등 우리가 경쟁우위를 지닌 산업과 접목한 '특화형 AI' 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월 15만원 농어촌 기본소득, 직장인 월 4만원 식비지원, 아동수당 만 11세까지 단계적 확대와 같은 불요불급한 선심성 예산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과감히 삭감할 필요가 있다.
설진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