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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반드시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한국 기업 현실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단순히 재무구조 개선을 넘어 경영권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경영권이 왜 보호받아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기업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공성을 지닌 존재이고, 주주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며, 전문경영인 체제로도 충분히 운영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겉으로 보면 합리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에는 '기업과 기업인' 사이의 실존적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기업과 기업인의 관계는 단순한 투자-운영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 사이와도 같다.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져 함께 삶을 설계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과정은, 기업인이 아이디어 하나로 회사를 창업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견디며 회사를 키워가는 여정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어느 사회가 "사랑은 해도 좋지만 결혼은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으니 이제 집을 나가라"는 식의 법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영권을 부정하라는 말은 바로 이런 잔인한 요구다. "너의 가족은 네 것이 아니다. 네가 키운 집은 네 집이 아니다. 이제 그 집을 더 잘 관리할 사람에게 넘겨라"라는 이야기다. 마치 "가장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이제 그만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는 사람에게 가장의 자격을 부여한다. 그 책임과 권한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업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성장시킨 사람에게 경영의 권한을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물론 경영권의 영속성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실패한 경영, 부도덕한 경영은 시장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창업자, 모든 오너를 잠재적 범죄자처럼 규정하고, 경영권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인을 '경영에서 쫓아내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이사회 판단하에 탄력적으로 결정되며, 자사주의 활용 역시 경영 전략의 일부로 존중받는다. 한국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배치되는 과잉 규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건강한 성장은 단지 배당 확대나 주가 상승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비전과 책임을 지닌 경영인의 리더십, 그리고 경영 전략의 유연함이 핵심이다. 자사주 소각이 그런 유연함을 제약하고, 경영권을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 제도는 '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제도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사회는 묻고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기업가정신을 존중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이해하며, 지속가능한 책임 경영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가장을 가족에서 쫓아내는 법을 공정하다고 믿을 것인가?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전 증권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