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1 | 0 | 사진 극단 온다 |
|
연극 '보도지침'은 막이 오르는 순간 관객을 단번에 법정이라는 긴장된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책상 위에 무겁게 쌓인 서류와 차갑게 정돈된 풍경 사이로 날 선 목소리들이 교차한다. 누군가는 기록을 외치고, 누군가는 침묵을 강요하며, 또 다른 이는 두려움과 분노를 뒤섞어 토해낸다. 무대 위 언어들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증언이자 고발처럼 울려 퍼지며, 객석은 어느새 방청석이 아니라 재판정의 한 자리를 차지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작부터 이 작품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 살아 있는 물음을 건넨다. 진실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이 무대가 단지 과거의 '사건극'으로 남지 않는 이유는, 재판정의 대사가 곧장 오늘의 감각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팩스로 내려온 지시문은 단어를 삭제하고, 얼굴을 지우며, 기사 전체를 축소시킨다. 작품은 이 지시가 특정 권력자만이 아니라, 그것을 '관행'으로 받아들인 언론 구조 전체와 얽혀 있음을 서서히 드러낸다. 관객은 무대 위 인물들의 윤리를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매일 소비하는 정보의 기준까지 돌아보게 된다.
이번 공연은 대학생 연합 극단 '온다'의 창단작이다. 연출과 무대, 조명, 소품, 의상, 배우들의 호흡까지 모두 청년 창작자들의 손끝에서 빚어졌다. 목소리는 객석을 곧장 파고들었고, 조명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얼굴 위에 스친 미세한 떨림이 생생히 드러났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대사의 무게는 한층 더 깊게 가라앉았다. 공연은 8월 30일과 31일 단 이틀간 이어졌으나, 짧음보다는 현장에서만 발생하는 직설적 힘이 더욱 뚜렷하게 남았다.
 | 02 | 0 | |
|
 | 03 | 0 | 사진 극단 온다 |
|
극은 현재의 재판정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내뿜으며 시작해 곧 대학 시절 연극반의 풍경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 장면들은 '왜 말해야 했는가'라는 질문의 뿌리를 드러내고, 다시 현재의 법정으로 돌아오며 원을 그리듯 닫힌다. 전반부의 재판 장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선언처럼 다가온다. 이곳에서 언어는 증거이자 무기이며, 침묵은 때로 공모가 된다. 검사와 변호사, 판사와 피고인이 각자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동안, 작품은 '합법'과 '정당'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합법의 언어가 언제 정당성을 잃는지, 반대로 정당성을 좇는 말이 어떻게 불법의 옷을 입게 되는지, 관객은 그 충돌의 순간마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대학 시절의 회상은 단순한 배경 설명에 머물지 않는다. 금서를 둘러싼 논쟁, 연습실의 긴장, 술자리에서의 언어와 균열이 차례로 이어지며 "왜 말해야만 했는가"라는 물음에 무게를 더한다. 연극반의 풍경은 활기차고, 때로 무모하며, 무엇보다 치열하다. 학생들이 "연극은 진실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외치는 순간, 무대는 법정과 극장을 가뿐히 넘나든다. 말이 현실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현실을 향해 던져지는 그 과정 자체가 공동체를 움직인다는 확신을 작품은 끝내 놓지 않는다.
이 작품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독백이다. 독백은 개인의 고백이자 시대의 기록으로 작동한다. "숨 좀 쉬게 해주십시오." 누군가 이 문장을 내뱉을 때, 객석은 미세한 바람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해진다. 그 말은 과거의 언론인을 대변하는 동시에 오늘을 사는 시민에게 필요한 호흡법이 된다. 독백이 끝나고 이어지는 침묵은 이 무대가 남긴 가장 정직한 잔상이다.
 | 04 | 0 | |
|
 | 06 | 0 | 사진 극단 온다 |
|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뼈대를 단단히 세웠다. 사회부 기자를 맡은 배서진은 단호한 발성과 세밀한 호흡으로 기록하는 존재의 무게를 보여줬고, 편집장 역의 양지영은 원칙을 굽히지 않는 기개를 절제된 어조로 담아냈다. 김민서(검사)는 절차의 언어를 차갑게 직조하며 법정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명주(변호사)는 담백한 호흡으로 반론의 윤리를 세워냈다. 황린지(판사)는 제도적 권위와 인간적 흔들림 사이의 간극을 세심하게 표현하며 극의 균형을 잡았다.
대조적으로 극 중 편집국장은 "우리는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대사를 반복하며 편집장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균형이라는 말은 언론이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무대는 그것이 진실의 무게를 희석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어떤 기사는 줄어들고, 어떤 사진은 지워지고, 어떤 단어는 빠져나간다. 작품은 그 '편집의 미학'이 언제 '검열의 기술'로 변하는지를 관객 앞에 보여준다.
재판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객석의 시간도 함께 느려진다.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판결문 낭독의 건조함 속에서 더 분명해지는 것은 결과의 모호함이다. 무엇이 지켜졌고 무엇이 무너졌는가. 작품은 승패의 내러티브를 거부한다. 대신 기록의 윤리, 말의 책임, 침묵의 공범성이라는 오래된 과제를 관객에게 되돌려 보낸다. 공연은 그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객석으로 넘어간다.
 | 07 | 0 | |
|
 | 08 | 0 | 사진 극단 온다 |
|
무대 바깥의 시선으로 나오면, 작품은 오늘의 언론 환경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정보 과잉과 가짜 뉴스, 클릭 경쟁과 알고리즘의 편향, 홍보와 광고의 경계가 흐려진 기사들 속에서 '보도지침'은 낡은 역사 용어가 아니라 형태를 바꾼 현재형일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작게 보도하고, 무엇을 빠르게 밀어 올리며, 무엇을 끝내 다루지 않는가.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뉴스 소비가 새삼 조심스러워진다.
이 공연이 남긴 잔상은 승리나 패배가 아니다. 기록하려는 사람과 삭제하려는 구조, 그 사이에서 주저하는 다수의 얼굴이 겹쳐진다. 작품은 특정 영웅의 서사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두려움과 후회, 망설임 같은 약함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다. 영웅의 결단이 아니라 시민의 선택이 무언가를 바꾼다는 믿음이 무대 아래에서 조용히 자란다.
이 공연은 듣는 연극이기도 했다. 배우들이 대사를 이어갈 때보다 멈추는 순간이 더 오래 각인됐다. 재판정 장면에서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대사가 반복되자 객석에서는 짧은 웃음이 흘렀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이어진 고문과 연행 장면 앞에서 사라지고, 대신 죄책감 같은 정적이 극장을 메웠다. 순간의 해소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겨진 건 무겁고 오래가는 침묵이었다. 작품은 감정을 크게 흔들면서도 끝내 관객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판단의 여백을 남겨두며, 답은 스스로 찾게 한다.
무대를 지탱한 것은 배우들의 집중력이었다. 배서진, 양지영, 김민서, 이명주, 황린지, 여지유, 강나윤, 이 일곱 배우의 이름은 기억할 만하다. 장면마다 과장과 절제가 치밀하게 어우러졌고, 특히 최후변론과 마지막 독백 구간에서는 대사의 리듬과 정적의 길이가 작품의 메시지를 단단히 붙들었다. 말은 기능적 설명에 머무르지 않았고, 감정은 과잉으로 번지지 않았다. 이 균형이 공연의 윤리적 태도와 맞닿아 있었다.
'보도지침'은 과거의 사건을 다루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공연은 역사적 사실을 단정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질문을 남긴다. 기록은 왜 필요한가. 균형이라는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언론의 자유는 어디에서 국가의 안보와 충돌하는가. 그리고 그 충돌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대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질문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
결국 이 무대는 극장 안팎의 시간을 잇는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뉴스 습관을 비추고, 개인의 감정이 공적 윤리와 맞물린다. 대학생 창작자들의 패기, 무대의 절제에서 비롯된 설득력, 관객에게 남겨진 질문의 무게가 함께 공연의 힘을 이룬다. 단 이틀간의 상연이었지만 그 짧음을 메운 것은 기록의 지속성이다. 공연은 사라졌지만 질문은 남는다. 그리고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이 작품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이어진다. 진실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연극이 남긴 마지막 물음은 지금도 우리 곁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