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O 이사 선임 ‘돌파구’…안전 의사결정 권한 확대
현대건설·포스코·HDC현산 등 일부 대형사 선제 도입
“책임 집중 완화·이사회 내 안전 기구 병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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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건설업계 전반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고 안전책임자(CSO)의 권한 강화와 함께 이들을 회사의 의사결정 핵심에 두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특히 단순 임원직에 머물던 CSO를 사내이사로 선임해 안전 관련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사례가 일부 대형 건설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의 시공능력평가 순위 상위 10대 건설사 중 이미 CSO를 사내이사로 선임한 곳은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3곳이다. 이외 일부 건설사도 CSO의 사내이사 선임을 검토 중인 상황이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CSO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기 위한 주주총회 안건 상정 등 전반적인 절차를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고 검토 단계 수준"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건설사들도 내부 논의 단계에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업계 내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다.
건설사가 CSO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흐름은 단순한 인사 차원을 넘어 중대재해 예방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조치라는 분석이다.
사내이사는 이사회 소속으로 업무 집행 의사결정과 이사의 직무집행을 감독할 권한을 갖는다. 현행 법령상 CSO의 직급이나 권한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지만, 사내이사로 선임되면 표결권을 행사하며 안전 예산과 정책을 주도할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서 권한 강화가 사고 예방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2022년부터 일찍이 CSO를 사내이사로 선임한 HDC현대산업개발은 당시 정익희 전 현대건설 임원을 각자 대표이사 겸 CSO 부사장으로 신규 선임하면서 안전·환경·보건 시스템을 총괄하도록 했다. 독립적인 조직 운영을 통해 안전 혁신 경영을 추진한 셈이다.
새 정부의 안전 의식 고취 기조와 맞물려, 국회에서도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는 점 역시 CSO의 사내이사 선임 확산 배경으로 꼽힌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 등 10명은 지난 8일 '건설기술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대형 건설공사 과정에서 사고 발생 시 경위 확인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영상 기록 의무화를 바탕으로 부실시공을 근절하겠다는 의도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발의해, 현재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 또한 안전관리 의무 위반으로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 건설사업자·엔지니어링사업자·건축사 등에 영업정지 또는 매출액의 최대 3%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대재해 관련법 위반 시 최종 결정권자인 CEO가 법적 책임을 지지만, CSO가 등기이사로 지정된 경우 처벌 등의 책임을 일부 분산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렇다 보니 CSO의 사내이사 선임을 검토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CSO의 사내이사 선임이 현실적으로 녹록하지 않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에 따른 경영 부담을 완화하면서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면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CSO 한 명에게 법적 책임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이사회 차원의 안전 위원회 등을 활성화해 집단적 책임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좌석이 한정된 이사회는 재무·영업 등의 보직이 우선되는 만큼, 지원 조직인 안전 부문이 의결권 중심에 설 수 있게 하는 업계 관행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배경에 건설사들의 '비용 부담' 문제도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공사비 상승과 직결되는 안전 투자 확대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안전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비용 증가 요인 때문에 CSO의 사내이사 선임이 더딘 측면이 있다"며 "정부의 강한 기조 속에 중대재해 '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CSO 책임 전가 방지·비용 효율성 확보 등을 병행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