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언론개혁입법, 속도보다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924010013477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5. 09. 26. 14:07

고삼석 동국대학교 AI융합대학 석좌교수,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고삼석 동국대학교 AI융합대학 석좌교수,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조직개편과 내란 진실 규명 문제를 맞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조직 개편을 못 한다고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 내란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고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본질적인 가치 아니냐. 그걸 어떻게 맞바꾸느냐"고 강조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입장과 달리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국정운영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원칙과 철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국회나 정부의 입법 혹은 정책 논의 과정에서 신속한 결정만을 강조하며 밀어붙이는 강경론과 정책 목표 및 수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신중론이 자주 충돌한다. 양자가 반드시 상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정책 결정이나 입법에 있어서 처리 시한을 정해 놓고 속도를 강조하다 보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거나, 정책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정책과 입법의 '실질적인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졸속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정책 목표 설정과 그것의 결정 과정이 잘못되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질 개선 목표는 실제 사업 집행 과정에서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홍수 예방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부족했다. 환경 파괴와 같은 외부 효과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강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과 시민단체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 또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 없이 단기간에 최저임금을 빠르게 인상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일자리 감소 등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으로 인해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처리 시한을 정해 놓고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언론개혁입법'에 대해 국회 밖 전문가들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있다. 이들이 가장 크게 문제 삼는 것은 사회적 숙의 과정이 실종된 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직무나 심의 대상에 변화가 없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까지 개편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민간인 신분인 위원장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퇴행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정치적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시민단체들의 지적에 더불어민주당은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통령도 문제를 제기한 언론보도 및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구체적인 법안조차 공개하지 않고 신속한 처리만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을 포함한 언론 관련 법안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근간이자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 보장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때문에 형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갖췄다고 입법의 정당성이 충족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러한 법안을 처리할 때는 신속한 처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숙의과정을 거치는 것이 실질적 정당성 확보의 전제조건이다. 바쁠수록 돌아가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못쓴다'는 격언이 있듯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정상적인 절차와 단계를 지키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빛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다. /고삼석 동국대학교 AI융합대학 석좌교수,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