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상 경제범죄에만 제한적 허용
형사소송법엔 명문화된 규정 없어
피해자 특성·규모도 고려해야
공론화 없이는 국민신뢰 해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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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 개정안에는 피의자가 수사에 협조하거나 공범의 범죄를 밝히는 대가로 형벌을 감경해주는 플리바게닝 조항이 포함됐다.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일반화된 수사 기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자본시장법상 경제 범죄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마약 등 일부 사건에서 수사 협조를 참작해 형을 감경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형사소송법에는 이를 명시한 규정은 없다.
복잡한 금융범죄나 대규모 조직범죄의 경우 내부자 협조가 절실하다. 핵심 관계자가 협력하지 않으면 범죄 전모를 밝히기 어렵고, 조직의 최상위 책임자를 증명해 내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증거 확보가 어려운 범죄의 특성상 수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실무적 필요성에서 플리바게닝이 도입됐다.
플리바게닝이 사법정의 실현에 기여하기 위해선 피해자의 특성이나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위반이나 마약 사건은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특정 집단에 집중돼 있다. 피해자가 범죄 행위에 일부 연루된 경우도 적지 않다. 명령이나 지시를 받은 하위 조직원이 협조해 윗선을 밝혀 처벌하는 것이 사법정의 실현에도 도움이 된다.
반면 특검 사건은 피해자가 광범위한 불특정 다수이며 사회적 파장도 크다.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판결이 나올 정도로 피해 범위가 넓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리바게닝을 통해 형량을 감경하는 것은 다수의 피해자 권리와 공정한 형사처벌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규모 피해 사건에서 형량 거래가 남발되면 사법 정의 실현에 대한 국민 신뢰가 크게 흔들릴 위험이 크다.
이 같은 위험에도 여당은 별다른 공론화 없이 형량 감경 권한을 한시적 수사기관인 특검에게 부여했다. 미국과 달리 검사와 피고인의 플리바게닝 협상을 법원이 심사·승인하는 절차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아무런 견제 장치 없이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면 자의적 수사나 정치적 이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출신 임무영 변호사는 "판사의 승인 없이 검사와 피의자가 거래를 하는 것은 굉장히 위법하고 리스크하다"고 우려했다. 임 변호사는 "수사에 자신이 없으니 결과 달성을 위해 별건 수사 형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걸 인정하는 것과 같다"며 "플리바게닝에서 가장 강하게 쓸 수 있는 무기는 '추가수사를 안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 특수부에서부터 흔하게 써오던, 가장 비판받던 수사 기법이다. 검사의 권한을 남용한 직권 남용"이라고 꼬집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 역시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를 밀어붙이던 여당이 이젠 형벌의 영역에 관여하는 사법적 권한까지 부여하고 있다"며 "피고인과 형량을 두고 협상하는 것은 검사의 법적 권한 밖의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특검이 플리바게닝을 제안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사실상 비상계엄의 비선실세로 꼽히는 인물"이라며 "중대 범죄의 핵심 인물들이 수사에 협조한다는 이유만으로 형을 깎아주는 것은 국민 법갑정에도 어긋난다. 효율성만 보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면밀한 법적 검토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