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석 확보' 범여권에 현실적 한계
"낡은 방식 벗고 유연한 전략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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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다수당이 수적 우세를 이용해 법안을 강행처리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수당이 장시간 토론을 이어가며 표결을 지연하거나 저지하는 제도다. 의회의 다수결 원칙에 대한 견제 장치로 활용되고 있으나 최근에는 '현실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행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시작 후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종결동의를 하면 24시간이 지난 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종결시킬 수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직후 곧바로 종결동의안을 제출해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다.
현재 범여권이 180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반복적으로 종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8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더 센'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지만 끝내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필리버스터의 '정치적 진정성'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본회의장에서 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 본회의장 사진과 함께 "완전 텅 빈 국민의힘"이라며 "무제한 토론을 요구해 놓고 한 명도 국회 본회의장에 없다"고 했다. 같은 당 허영 의원도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놓고 단 한 명도 듣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직무유기',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은 무성의한 필리버스터만 고집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국회와 정치가 마비되는 일은 결코 없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악법의 일방적 통과"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수진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국민의힘이 4박 5일 필리버스터와 장외투쟁으로 막아섰지만 수석 우위를 앞세운 민주당은 토론을 끊고 표결을 강행했다"며 "협치의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고 국회는 다시 민주당 폭주의 무대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절차 저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경고"라며 "법치를 무너뜨리고 언론을 장악하고 국회권한까지 남용하는 입법독주를 막아내기 위한 국민의 울부짖음"이라고 비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필리버스터의 취지는 다수당의 입법독주를 막기 위한 마지막 방어수단이지만 옛날방식"이라며 "시간낭비이자 낡은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필리버스터를 해도 다수당의 입법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며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