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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이 미국에서 운영 중인 필리조선소. /한화 |
이번 제재의 실질적 타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은 현지 수요에 대응하는 생산기지여서 중국과 거래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이 희토류와 상대국 선박의 자국 항구 입항 시 특별수수료 부과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한 가운데 마스가를 상징하는 한국 조선사를 겨냥한 것은 절대 가볍게 볼 게 아니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돕는 우리 기업도 미국과 같은 '진영'으로 간주해 제재하겠다는 걸 중국이 명확히 했다고 봐야 한다. 핵을 가진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에 미국의 안보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미국에 '저자세'로 무역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더해 중국까지 이 약점을 파고들어 강공을 하는 측면이 있다. 아울러 이번 제재는 미·중 양국 간에 국한됐던 통상·공급망 갈등이 이제는 친미 대(對) 친중이라는 진영 간 갈등으로 진화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미·중 양국 갈등이든 진영 갈등이든 상관없이 한국이 가장 취약한 고리 내지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 내에는 한국 외에 이탈리아, 호주 등도 현지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중국이 유독 한국 한화만을 겨냥한 게 그 증거다. 중국이 한국 조선업의 역량을 두려워한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정부와 경제계는 이번 제재가 앞으로 중국이 한화오션 본사는 물론 우리 방위산업 전체를 제재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신호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중국은 조선업뿐 아니라 반도체·배터리 등 한·미 간 첨단산업 협력에 대해 노골적 견제를 가할 수도 있다. 만약 제재 대상을 미국 내 자회사를 넘어 본사·계열사까지 연계 기업으로 묶어 확대한다면 후폭풍은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이달 말 시진핑 주석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유화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이는 시점에서 중국이 강공을 둔 것은 결코 예사롭게 볼 게 아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이 대통령이 내세우는 미국과 중국 간 '가교론'이나 '균형 외교론'은 설자리를 찾기 어렵다. 외교안보 당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우선, 난항을 겪고 있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해 양국 간 수정 제안이 이루어졌고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은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과 협상이 지체되면 중국은 이 약점을 더욱 파고들 것이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조속히 타결해 미·중 양쪽에서 당하는 상황만큼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