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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증시의 닛케이 평균주가가 5만 엔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 수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이번 상승세는 시장 전반의 호조를 반영하기보다 일부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에 지나치게 편중된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10월 29일 기준 닛케이 평균주가는 전날보다 1088엔 상승한 5만1000엔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날 구성 종목 225개 가운데 약 80%가 주가 하락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평균이 큰 폭으로 오른 배경에는 AI 반도체 시험장비를 공급하는 어드밴테스트,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 기업 신에츠화학, 그리고 도쿄 일렉트론 등 세 곳이 있다. 특히 어드밴테스트 주가가 올해 들어 3배 가까이 급등하며 닛케이 지수를 단독으로 400엔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어드밴테스트는 미국과 대만의 AI 반도체 시장 확대에 따른 특수로 실적이 급증하고 있다. 대형 데이터센터와 생성형 AI 연산능력 확충에 필요한 반도체 테스트 장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일본 내부에서도 'AI 3강'으로 불리는 이들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도쿄 일렉트론 역시 해외 반도체 장비 수출 호조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0% 넘게 증가했다. 신에츠화학은 실리콘 웨이퍼 공급망 안정화와 고성능 반도체 소재 판매 확대를 바탕으로 주가가 꾸준히 상승 중이다.
이처럼 세 기업의 급등이 닛케이 평균을 과도하게 밀어올리며 '대표성 왜곡'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닛케이 평균은 시가총액이 아닌 주가 단가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단가가 높은 일부 종목이 지수 전체를 좌우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즉 대다수 기업 주가가 제자리거나 하락해도 고가 종목 몇 개가 상승하면 지수는 급등하는 착시가 발생한다. 실제로 10월 말 기준 닛케이 구성 종목 중 절반 이상은 연초 대비 수익률이 음(-)의 영역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편중이 단기적으로는 일본 증시의 'AI 열기'를 상징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변동성 확대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한다.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AI 투자 사이클의 조정이 발생하면 지수를 끌어올렸던 소수 종목이 급락해 전체 시장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일본 증시의 상승폭은 AI 관련 장비 기업 세 곳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으며, 기계·자동차·소매 업종 등의 박스권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조정 압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다. 닛케이 평균의 '5만 엔 돌파'라는 상징적 수치가 시장의 과열 인식보다 '추격매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2주간 국내 개인투자자의 반도체 관련 ETF 거래량이 전월 대비 30% 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부 기술주에 자금이 몰리며 내수주, 금융주 등 전통 강세 업종의 자금 유출이 가속하는 추세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이런 불균형이 실물경제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주가 버블'로 전개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은행 관계자는 "AI 투자가 경기 전반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자산가치가 실적 개선 속도를 앞지르면 조정 국면이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결국 닛케이 평균의 5만 엔대 고공행진은 화려하지만, 지금의 상승은 일본 경제의 체력보다는 'AI 3강'의 폭등에 의한 기형적 구조라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향후 실적과 글로벌 반도체 경기 흐름이 둔화할 경우, 견고해 보이는 지수도 순식간에 꺾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