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형 용병과 상호 교류가 만들어내는 지속 가능한 관계의 구조
|
이러한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성장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K리그 일부 구단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지역은 K콘텐츠 친화도가 높고 젊은 층의 디지털 참여도가 강하다는 특성을 갖는다. 특히 축구라는 공통의 관심사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관계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K리그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
|
K리그가 동남아 시장의 잠재력을 처음 체감한 상징적인 사건은 2019년 베트남의 스타 응우옌 꽁푸엉이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였다. 당시 베트남 팬들은 꽁푸엉의 경기를 보기 위해 유튜브 불법 중계에 대거 몰려들었고, 실제 개막전 동시 접속이 폭증하자 연맹이 긴급히 공식 온라인 생중계를 마련해야 했을 정도로 현지의 폭발적인 관심이 확인되었다.
베트남 팬들은 경기 전체를 실시간으로 캡처해 공유하고, 꽁푸엉의 교체 투입 장면이나 벤치 모습까지 밈(Meme)으로 재가공했으며, 한국 언론과 현지 반응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퍼뜨리는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선수의 활약이 아니라 '리그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팬덤의 서사와 감정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K리그는 해외 팬을 단순한 시청자가 아닌 감정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 왔으며,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존재감을 키우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서사의 힘'이 팬덤을 어떻게 형성시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K리그 팬 경험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나타시아 씨는 2019년 울산 HD 직관 후 팬이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했다.
나타시아 씨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부산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울산HD 직관을 통해 국내 축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후 "2019년 여름 이적 시장 때 김승규 선수가 돌아온 것을 보며 축구에서 '낭만'을 느꼈고 팀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해 마지막 동해안 더비 경기에서 패배해 경기장에서 많이 울었지만, 오히려 그 순간과 경험 때문에 울산을 더욱 사랑하고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울산은 이 최종전 패배와 더불어 2위 전북 현대의 승리로 인해 다득점 단 1골 차로 K리그 우승을 놓치는 뼈아픈 좌절을 경험했다.)
이처럼 K리그가 중요하게 포착한, 결과가 아닌 한 선수의 복귀와 팀의 좌절이라는 극적인 '서사'가 애정을 낳는 핵심 동인이 된 것이다. 이 팬덤은 팀보다 선수를 통해 리그로 진입하고, 일방향 중계보다 상호작용을 선호하며, 결과보다 과정을 좋아한다는 동남아 팬덤의 특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왜 하필 동남아인가. 답은 시장의 기초 체력에 있다. 젊은 인구와 높은 모바일 보급률, K팝과 드라마로 형성된 한국 문화 친숙도, 그리고 압도적인 SNS 확산력이 결합되어 있다. 선수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 훈련과 회복의 디테일, 동료들과의 일상, 경기 뒤의 짧은 루틴 같은 이야기들이 곧 콘텐츠가 된다.
따라서 K리그의 동남아 전략은 경기의 질과 별개로 이야기의 질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경기장의 90분이 끝난 뒤에도 디지털 공간에서의 90일을 이어가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시장에서의 핵심 경쟁력이다.
|
선수 이동은 여전히 강력한 기폭제다.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수비수 아스나위가 K리그에 도전했을 때 구단 SNS 팔로워가 단기간 급증했고 현지 중계 파트너십이 연결되기도 했다. 다만 초기에는 스타 한 명의 파급력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몸값 대비 기량 검증이 어렵고 제한된 외국인 쿼터 안에서 전력과 마케팅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한계였다.
이러한 단발성 스타 영입의 한계는 현지 팬들의 피드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나타시아 씨는 아스나위와 아르한 선수에 대한 현지 반응을 설명하며, "처음에는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아스나위 선수의 경우 K리그 2부 소속이어서 경기 시청에 한계가 있었고, 2년 차에는 관심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아르한 선수 같은 경우에는 경기에 워낙 많이 출전하지 못해 오히려 그 점 때문에 K리그와 해당 클럽에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경기 출전이나 리그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단발성 스타 영입은 팬덤의 확장이 아닌 해당 클럽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결국 마케팅 성공은 '함께 성장하는 서사'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과거의 실패 사례는 이제 환경이 달라지면서 극복의 기회를 맞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25년 이사회를 통해 2026시즌부터 K리그의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과거에는 외국인 선수 쿼터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구단들은 즉시 전력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이 검증된 비싼 스타' 영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동남아시아 선수가 한국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자국 내에서는 이미 슈퍼스타로 분류되어 몸값이 매우 높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실력 대비 과도하게 높은 몸값 때문에 제한된 쿼터 안에서 영입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으며, 이는 마케팅 효과와 전력 강화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운 딜레마였다.
하지만 이제 구단은 주전 전력 외에도 성장형 유망주를 저비용으로 다수 발굴해 중장기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갖게 되었다. 즉시 전력감 영입과 별개로 동남아 유망주의 적응과 성장을 하나의 서사로 설계하고 팬과 함께 따라가는 방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는 '성장해서 정말 제대로 팀에 녹아들 수 있는 육성형 용병'을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방향이 리스크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팬덤을 구축하는 해법으로 떠오른다.
|
|
클럽의 접근법은 점점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다. 다국어 소셜 운영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해야 한다. 단순 번역 자막이 아니라 현지 문화 코드를 이해한 기획이 필요하며, 선수의 모국 명절에 맞춘 축하 영상, 현지 학교나 동호회와 연결한 메시지 릴레이, 현지 인기 크리에이터와의 합동 라이브 같은 프로그램은 작은 제작비로 큰 파급력을 만든다.
콘텐츠 배포에는 명확한 리듬이 필요하다. 하이라이트는 빠르게, 비하인드는 꾸준히, 양방향 라이브는 정기적으로라는 원칙을 정하고, 요일·시간대를 고정해 팬의 생활 루틴에 들어가면 체류 시간이 쌓인다. 구단은 경기 뒤 24시간 안에 요약판, 72시간 안에 비하인드, 일주일 안에 롱폼 인터뷰라는 리듬만 만들어도 팬 피드는 자동으로 재편집과 공유의 선순환을 일으킨다.
그러나 팬들은 여전히 정보 접근성에서 큰 어려움을 느낀다. 나타시아 씨는 "해외에 거주하면 중계를 보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언어 문제의 경우, 저는 한국어를 할 수 있어 문제가 없지만,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보를 얻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라며, 특히 "U22 규정, 상무 규정,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정,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K리그 승강제 규정까지, 이 모든 복잡한 규정들을 한 번에 정리해 주는 사이트가 없어서 정보를 찾기 매우 어려웠습니다."라고 토로했다.
리그는 자체 플랫폼과 현지 OTT, SNS 라이트 스트리밍을 묶는 혼합형 배포 전략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으며, 더 나아가 연맹 차원에서 복잡한 규정과 리그 정보를 현지어로 쉽고 명확하게 정리해 제공하는 통합 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이 시급하다. AI 자막으로 언어 장벽을 낮추고, 클립 제목과 썸네일을 현지 어휘로 최적화하는 디테일한 접근이 전환율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
|
K리그의 동남아 전략은 디지털 공간에만 머물 수 없다. 나타시아 씨가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팬 커뮤니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팬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K리그 관련 행사가 있으면 좋겠고, 함께 펍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라고 제안했듯이, 관계 맺기는 결국 사람들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국내에 거주하는 다수의 동남아 유학생, 근로자, 이주민들을 K리그 오프라인 경험의 거점이자 앰버서더로 활용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다문화 지역과 연계한 매치데이 프로그램을 정례화하고, 구단 투어, 모국 국기와 언어를 활용한 웰컴 키트 제공 외에도 이들이 주도하는 공동 관람 행사 등을 지원하여 온라인의 정주성을 오프라인의 충성으로 연결해야 한다.
수익화는 단계별 사다리로 설계한다. 입구에서는 무료 하이라이트와 숏폼, 중간에서는 저가 멤버십과 언어별 비하인드, 상단에서는 프리미엄 팬미팅과 원정 패키지, 투어 상품이 기다리는 구조다.
스폰서십은 배너 노출에서 공동 제작으로 옮겨가야 한다. 환경 캠페인, 교육 프로그램, 문화 체험 같은 테마를 잡고 브랜드와 구단, 리그가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해외 시청 분모가 커질수록 리그 전체의 미디어 패키지 가치는 오르고, 다년도 계약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결국 개별 구단의 성과가 리그 브랜드로 환류되고, 리그의 캠페인이 다시 구단 활동을 밀어주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
|
남는 과제는 분명하다. K리그는 일회성 이벤트의 유혹에서 벗어나, 데이터 관리의 정교화를 통해 국가별·언어별로 상이한 성장 곡선을 읽어내야 한다. 또한, 현지 언어 역량과 문화 리서치, 영상 제작 및 커뮤니티 운영을 겸비한 전문 인력이 각 구단과 연맹에 상주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팬과의 관계에서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며, 작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꾸준함이 장기적인 성공을 담보한다.
K리그의 동남아 전략은 수출이 아니라 관계 맺기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문장이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오늘의 한 장면을 내일의 습관으로 만드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 구축과 전문 인력 투입은 현재 K리그 구단들이 직면한 재정적 압박 속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많다. 당장 리그에 동남아시아 선수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은 공백 상태는 과거 단기적 전략의 한계가 남긴 명확한 결과이다. 하지만 K리그의 미래 자생력과 아시아 축구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이 길은 어렵다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당위성을 갖는 길이다.
경기는 매주 결과가 바뀌지만, 관계는 계절을 넘어 쌓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식을 정하고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그 리듬을 팬과 함께 공유하는 일이다. 그때 동남아의 화면 속 함성은 스탠드의 함성으로 이어지고, 콘텐츠는 문화가 된다. 리그가 성장하는 가장 단단한 길은 결국 사람에게로 수렴한다. 동남아의 젊은 팬이 한국의 축구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날, K리그의 시장은 수치가 아니라 관계로 증명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