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이 이끄는 공감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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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도서 '케데헌에서 발견하는 한국의 사유들'은 그 보이지 않던 뿌리를 추적하는 철학적 에세이다. 저자 김범진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를 단순한 성공 사례가 아닌, 한국 문화 전체로 이어지는 사유의 실마리로 바라본다. 이 애니메이션은 화려한 K-POP 아이돌이 사실은 악마 사냥꾼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으며, 저자는 스크린에 스쳐 지나가는 작은 떨림 속에서 수천 년 이어진 정신의 흐름을 발견한다.
이 책은 단순한 리뷰나 감상문이 아니다. K-문화의 인기를 흥행 지표나 산업 확장으로만 설명하는 대신, 그 감동의 근원을 사유의 차원에서 추적한다. 한국문화가 세계인의 정서와 맞닿는 이유. 저자는 그 중심에 '섬세함의 철학'을 놓는다. 작은 요소가 감정을 움직이고, 조용한 장면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힘. 이 책은 그 미세한 감각의 작동 방식을 촘촘하게 분석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섬세함은 단순한 '정교함'이 아니다. 작은 것이 서로를 잇고, 다름을 부드럽게 품어내며, 감정의 결을 따라 관계를 짜나가는 방식 전체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섬세함의 철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K-콘텐츠에 녹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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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석 속에서 책이 강조하는 '섬(纖)'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인상적이다. 한 올의 비단실을 뜻하는 동시에 매우 작은 수 개념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 문화가 작음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BTS의 호흡을 맞춘 안무는 완성도를 넘어 감정을 직관하게 만들며, 한강 소설의 문장 하나는 독자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다. K-드라마의 정적 장면이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는 경험 역시 이 작은 떨림에서 비롯된다. 책은 이것을 K-문화가 지닌 고유한 미학이자 시대가 찾던 감수성이라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의 중요한 공헌은 K-문화의 현상을 한국 사상의 흐름 속에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풍류도에서 드러나는 흐름의 아름다움, 화엄과 화쟁에서 강조한 다름의 연결, 성리학의 리와 기가 말하는 형태와 기운의 조화는 모두 세계를 부드럽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경쟁과 지배가 아니라 관계와 공명에 주목한 철학. 책은 바로 이 지점이 오늘 세계가 K-문화에 기대고 있는 정동이라고 설명한다. 공감과 연결을 핵심으로 하는 감각적 공동체. 이는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위로이자 대안이 된다.
특히 저자가 한국어에서 발견한 직물적 세계관은 이 책의 독창적 분석을 뒷받침한다. 한을 풀다, 인연을 맺다, 실타래가 꼬이다. 감정과 관계를 실로 이해하는 언어는 존재와 존재를 단단하게 유기적으로 묶는다. 악을 적대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얽힌 매듭을 풀어내고 본래의 세상으로 되돌리는 방식.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결말이 치유와 공명에 그 의미를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악의 근절보다 상처의 회복에 몰두하며, 이는 곧 한국적 이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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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김범진은 명상과 강연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을 오랫동안 마주해 온 사유의 관찰자다. 그의 글은 학술적 내용이라도 어렵거나 냉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성스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감정을 어루만진다. 독자는 읽는 동안 피곤한 이론에 갇히는 대신,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작은 감각을 깨우게 된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주변의 바람 소리, 누군가의 짧은 미소,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도 같은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문화 분석을 넘어 감수성을 전환하는 책이다.
KAIST 명상과학연구소 김완두 소장은 추천평에서 이 책을 "K Wisdom Culture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평한다. 그는 K-팝과 K-드라마가 감각의 한류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지혜의 한류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세계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새로운 문명의 옷감을 짜나가는 과정이다. 언젠가 더 많은 이들이 한국의 사유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성취는 세계가 주목하는 현상을 '한국적 사유'라는 토대 위에 고요하게 세운다는 점이다. K-문화가 한 시대의 트렌드를 넘어, 어떻게 인류적 감각의 변화와 연결되는지 알려준다. 거창한 말 대신, 작은 결을 찾아 나서는 태도로. 애니메이션 한 편에서 시작한 탐구가 한국 사상의 깊은 뿌리를 만나고, 다시 오늘의 세계와 공명하는 철학적 울림으로 확장된다. 한국 문화가 세계의 감정과 감각을 흔드는 이유. 그것은 작은 것의 소중함을 믿는 힘 때문이다.
'케데헌에서 발견하는 한국의 사유들'은 K-문화의 흐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한국 사상과 미학의 배경을 현대적 언어로 접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된다. 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읽어볼 만한 통찰을 제시한다.
작은 떨림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이 책은 그 떨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서로의 결을 어루만지며 살아갈 수 있을지 조용하지만 명료한 질문을 건넨다. 서로를 잇는 실이 있다는 사실, 각자의 결이 모여 하나의 무늬를 이룬다는 감각을 잊지 않게 해 준다. 지금 세계가 한국 문화에서 그러한 무늬의 단서를 발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