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김철호 창업자 '경성정공' 설립
자전거 생산부터…1973년 소하리공장 준공
1997년 외환위기 부도…현대그룹 인수
4년전 사명 '기아' 변경…EV 전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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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정공' 모태…산업보국서 기술자립까지
5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의 모태는 1944년 김철호 창업자가 설립한 '경성정공'이다. 그는 창립 연설에서 "가난을 추방하고 자주 국가를 세우는 길은 기계공업을 발달시키는 것"이라며 산업보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에는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바꾸며 "아시아에서 일어난다"는 포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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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첫 부도 이후에도 기아는 신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1962년 내놓은 국산 오토바이 'C-100', 삼륜차 'K-360'은 당시 열악한 도로·연료 사정에서 최적의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1973년 국내 최초 종합자동차공장인 소하리공장을 준공하며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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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와 법정관리…봉고·프라이드로 되살아나
1980년대 자동차 산업 통폐합조치로 승용사업에서 철수한 기아산업은 상용차 '봉고'로 돌파구를 찾았다. 봉고는 다양한 계층의 수요를 흡수하며 출시 3년 만에 누적 10만대를 넘겼고, 기아의 실적도 흑자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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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속 부도유예 사태를 맞으며 경영이 붕괴했다. 분식회계, 무리한 확장, 소유·경영 분리 문제 등이 한꺼번에 터지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기아의 전환점은 이듬해 현대그룹의 인수였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 최우선주의'와 경영 정상화 조치, RV 차량 라인업 확대 등이 시너지를 내면서 기아는 2000년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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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혁신·글로벌 생산 확대…'뉴 기아' 탄생
2000년대 이후 기아는 '3-less(기반·차별성·의욕 상실)'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 체질 개선에 나섰다. 2006년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디자인 경영'을 선포했고, 이듬해부터 기아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디자인 혁신의 결실인 K 시리즈는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됐다.
기아는 슬로바키아 질리나·미국 조지아 등 해외 생산기지 확대에도 속도를 냈다.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양산한 K5는 북미 시장 점유율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 시장 부진과 성장 정체가 이어지자 2018년 권역본부제를 도입해 지역별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2019년 인도 아난타푸르 공장을 통해 신흥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2021년에는 사명을 '기아자동차'에서 '기아(Kia)'로 바꾸며 대전환을 선언했다. 기업 이미지(CI) 전반을 손질하고 '영감을 주는 움직임(Movement that inspires)'을 새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2륜·3륜·4륜을 거쳐온 80년 모빌리티 DN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전기차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EV6·EV9뿐 아니라 EV3·EV4·EV5 등 대중형 라인업까지 확장하며 친환경 포트폴리오를 강화 중이다. 목적기반모빌리티(PBV)는 1980년대 다목적 차량 봉고의 헤리티지를 전동화 시대에 재해석한 것으로, 기아의 차별화된 미래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