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돌아온 산타 체칠리아, 임윤찬·하딩의 첫 협연 '고엽'·'아름다운 밤' 이례적 두 번 앙코르에 객석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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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이탈리아 명문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7년 만의 내한 무대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피아니스트 임윤찬(21)과의 협연은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지난 4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에서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짧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다. 재즈풍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고, 공연장은 순식간에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이날 임윤찬이 국내 무대에서 처음 선보인 곡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1928년 미국 순회공연 중 접한 재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이 작품은 세 개의 악장마다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낸다.
재즈 리듬과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즉흥 선율이 어우러진 1악장에서 임윤찬은 현란한 속주로 공연장을 들썩이게 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임세열 음악평론가는 "생명력이 넘치는 라벨 피아노 협주곡이었다"며 "과감하고 개성적인 루바토(템포 변화)와 악센트(강조)를 구사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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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모차르트의 서정성을 닮은 2악장은 전혀 다른 임윤찬을 보여줬다. 각각의 음을 깊이 있게 눌러내며 섬세한 음색을 빚어냈다. 한 음 한 음에 집중하며 섬세함을 극대화하는 그의 연주에 객석은 숨을 죽였다. 3악장에서 임윤찬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냈다. 마치 질주하듯 건반을 휘몰아치는 그의 연주는 관객들을 압도했다. 목관악기와 금관악기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음향 속에서 피아노는 더욱 빛을 발했다.
임 평론가는 "호로비츠가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라며 "터치의 질감과 색채감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라벨을 들려주었다"고 극찬했다.
23분간의 연주가 끝났지만 관객들의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임윤찬은 두 곡의 앙코르로 화답했다. 직접 편곡한 '고엽'에 이어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던 코른골트의 '아름다운 밤'까지. 이례적인 두 차례 앙코르에 관객들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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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2부 무대는 다니엘 하딩이 이끄는 산타 체칠리아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연주한 이들은 작품의 웅장한 규모를 충분히 살려냈다. 임 평론가는 "긴 호흡으로 아주 호소력 있는 하딩만의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줬다"며 "치밀한 빌드업으로 작품의 조형을 호소력 있게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안토니오 파파노가 탄탄하게 닦아 놓은 토대 위에서 하딩과 악단의 호흡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110년 역사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정명훈이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던 악단이다. 이날 공연은 2024/25 시즌부터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하딩과 함께하는 첫 내한 무대였다.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 서곡으로 시작해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을 앙코르로 마무리한 이날 공연은, 110년 전통의 명문 오케스트라와 21세기 젊은 거장이 만들어낸 기억할 만한 무대였다.
한편 이날 공연에서는 관람 방해 소동이 잇따랐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의 조용한 피아노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객석 한 휴대전화에서 남성 목소리가 약 30초간 울려퍼졌고, 앵콜 중에도 비슷한 소음이 재차 발생했다. 최고 45만 원의 티켓을 구매하고 1년을 기다린 관객들은 "역대급 관크(관람 방해꾼)"라며 분노했으며, 공연 후 로비에서는 해당 관객을 찾으려는 소란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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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하딩이 이끄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가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내한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의 환호 속에 커튼콜을 하고 있다.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