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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 문명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어는 극단성(extremity)이다. 20세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인종청소나 대규모 살상무기의 사용이 단적인 사례다. 지구인을 제외하면, 지금껏 알려진 그 어떤 생명체도 수백만 동족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파괴적 극단성을 보이지 않는다. 극단성은 다른 생명체에선 관찰되지 않는 지구인의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의 극단성은 대개 양분된 집단 사이의 극한 대립을 통해 표출된다.
전쟁, 정치투쟁, 집단 폭력 등 지구인들이 쉴 새 없이 날마다 서로 갈등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식량이나 광물자원 등 한정된 재원을 놓고 벌어지는 경제 전쟁은 지구인 외에도 거의 모든 생명체가 보편적으로 보이는 생존 경쟁의 한 양상일 뿐이다. 지구인들 사이의 극한 대립이 모두 경제적 요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 지금껏 세계사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 중엔 종교적 가치나 정치적 이념에서 기원하는 비경제적 전쟁도 부지기수다. 특히 같은 나라나 동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전(內戰, civil war)의 경우엔 비경제적 전쟁의 비율이 경제적 전쟁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물론 더 많이 갖고 누리기 위해 싸우는 명백한 경제 전쟁에 연루될 때도 지구인들은 거창한 명분과 숭고한 가치를 내세우지만, 진정 순수하게 명예, 허영, 분노 등의 주관적 감정에 휩싸이거나 정의나 선(善)을 실현한다는 거대 명분에 도취하여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면서까지 파괴적인 전쟁에 돌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간은 끊임없이 명분의 늪에 빠져서 서로 죽고 죽이는 투쟁을 한다. 모든 일에서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못하고 "지나치게" 심한 지경까지 서로 밀고 당기며 몰려가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원용하자면, 지구인들은 지나치게 의롭고 지나치게 지혜로워서 결국 파멸을 자초할 지경에 이른다. 지나친 의는 불의와 같고, 지나치게 지혜는 어리석음,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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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미도가 물었다. "이 세상 다른 모든 생명체와는 달리 지구인들은 왜 스스로 멸종의 위기에 놓일 만큼 극단적 탐욕, 극단적 애증, 극단적 분노, 극단적 사유, 극단적 행동에 빠져드는 걸까요?" 극단적 행동은 극단적 감정과 극단적 생각과 함께 간다. 걷잡을 수 없는 증오가 인간의 현실 인식을 왜곡되고 편향되게 몰고 갈 수도 있고, 인지적 착각이나 정신적 착란 등이 인식론적 오류를 일으켜서 인간의 감정을 극단화시키기도 한다. 말하자면 심리적 극단성은 인지적 극단성과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어서 절대로 분리될 수 없지만, 엄밀히 선후를 따져 보면 심리 상태가 인지 기능을 방해하는 때도 있고, 인지 기능이 심리 상태를 조건 지우는 때도 있다. 극단적 감정과 극단적 생각이 극단적 행동을 유발하고, 극단적 행동은 다시금 극단적 감정과 극단적 생각을 강화한다.
2차대전 당시 나치식 인종청소와 문화혁명 당시 중국 홍위병식 집단광기는 인간의 뿌리 깊은 극단화 성향이 집합적으로 증폭되어 표출된 정신 병리적 광기였지만, 그러한 광기의 뿌리엔 단순히 뜨거운 가슴에서 용솟음친 격정뿐만 아니라 차가운 머리에서 가공·처리된 현실 인식과 당위 논리가 놓여 있었다.
나치 과학자들은 19세기 인종주의적 인류학과 속류화된 다윈 진화론을 뒤섞어서 아리아 인종 제일주의라는 우생학(優生學, eugenics) 이론을 만들어냈다. 건강한 유전자가 강한 국가를 만들고 불량한 유전자가 병든 나라를 만든다는 '인종 위생(racial hygiene)'의 관념 위에서 1933년 나치당은 유전적 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생식능력을 거세하는 단종(斷種) 법안을 제정했고, 1939년엔 장애인을 합법적으로 제거하는 T4 안락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나치의 이러한 극단적 생각은 얼마 후 홀로코스트의 만행으로 이어졌다.
1966년 홍팔월(紅八月)의 광기에 사로잡혀 베이징 다싱구의 빈민가로 몰려가선 출신성분이 나쁜 1772명의 이른바 '계급천민(階級賤民)'을 잔악무도하게 때려죽인 중국의 홍위병들 역시 마르크시즘이라는 유사 과학적 역사관과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폭력 혁명론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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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정 인간 본성의 극단화 경향은 과연 어디서, 왜, 어떤 이유에서 생겨났는가? 왜 유독 인간만이 다른 동물 세계에선 발견되지 않는 집단적 극단화의 경향을 보이는가? 지구인의 극단성이 언어와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한다는 가설이 설득력 있다.
현실 세계는 무한정 복잡한데, 인간 언어는 지극히 단순하다. 인간은 지극히 단순한 언어를 매개로 무한정 복잡한 현실을 인식한다. 모든 동물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 외부 세계의 자극을 일단 수용하지만, 인간의 인식은 의식에서 감각을 지각하는 순간부터 언어를 매개로 복잡한 감각들을 분류하고, 또 분석한다. 인간의 인식은 원초적 출발점부터 언어적으로 전개된다. 언어를 매개로 삼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추상적 사유는 단순화의 위험, 일반화의 오류, 극단화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유대인을 해충, 독균이라 멸시했던 나치당의 인종청소와 자의적으로 규정된 '인민의 적들'을 싸잡아 우귀(牛鬼, 소귀신)·사신(蛇神, 뱀귀신)이라 모독했던 중국공산당의 계급 학살(classicide)은 언어적 극단화가 정치적 만행으로 표출된 극단적인 사례들이다. 나치당은 '유대인=해충'이란 언어적 등식을 만들어 "해로운 벌레는 인간의 공영을 위해서 박멸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를 끌어냈다. 중국공산당은 '적인(敵人)=우귀사신'의 등식을 만들어서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 적인을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는 행동 강령을 도출했다.
나치당과 공산당의 정치적 선동 언어에 반복적으로 세뇌당한 대중 개개인은 모두가 언어를 매개로 세계를 인식하는 '호모로퀜스(Homo Loquens)'이기 때문에 스스로 옳다는 거짓 확신의 노예가 되어 대규모 집단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다. 정치적 극단화가 호모로퀜스의 숙명이라면, 지구인의 다른 이름은 '호모 울트라누스(Homo ultranus, 극단적 인간)'가 아닐 수 없다.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