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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어떤 독립을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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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2. 09. 08:23

평범한 하루에서 발견한 독립의 마음
역사의 이름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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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바람엔터테인먼트
독립운동가 권애라 선생의 이름은 은평구 불광역에서 독바위역까지 이어지는 명예도로명으로 숨 쉬고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을 또렷한 기억 속에 품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오는 12월 11일부터 14일까지 극장 봄에서 선보이는 연극 '권애라'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관객들에게 잊힌 이름을 다시 부르며, 동시에 오늘의 우리 삶 속에서 독립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 작품에는 독립운동가 권애라 선생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놓인다. 국가의 거대한 서사가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이어지는 독립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작품이다. 독립을 단지 과거 혹은 교과서 속에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 작품의 중심에 있다.

작 연출을 맡은 반무섭 연출가는 연출의 글에서 독립과 자주라는 말에 오래 고민해 왔다고 고백한다. "완전한 독립은 어떤 걸까. 스스로 선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사유는 현대 사회의 현실과 맞닿는다. 촘촘히 얽힌 관계망,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는 구조. 그 안에서 '독립된 나'는 어떻게 가능한가.

연출가는 독립이 과거의 영웅적 장면이 아니라 지금을 버텨내는 태도와 마음에도 스며 있다는 사실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떠올리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목숨값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은 편치 않은 일"이라는 문장 또한 선열들의 희생을 단순히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마음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목소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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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바람엔터테인먼트
무대는 세 개의 옴니버스 형식이다. 연결되지 않는 세 이야기 속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오늘의 풍경이 담긴다. 두 명의 인물만이 등장하는 최소한의 구성은 관계의 밀도를 한층 짙게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 '여행'은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부부의 대화 속에서 시작된다. 가방 속 짐 하나를 두고 나누는 일상의 말투 속에는 자유를 향한 염원이 스며 있다. 한 걸음만 내딛어도 달라질 수 있는 삶을 향한 미세한 떨림이 관객과 자연스레 맞닿는다. 정마린 배우와 이봉근 배우는 관계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균열과 변화의 조짐을 무대 위에 설계해 보일 예정이다.

'투잡'은 본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투잡을 택한 사람의 하루를 비춘다. 손님 앞에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끝내 놓을 수 없는 존엄. 그것을 지키는 일이 바로 그 사람에게는 독립을 이어가는 행위일지 모른다. 김홍택 배우와 이승기 배우는 흔들림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의 마음을 현실감 있게 담아낼 것으로 보인다. 관객은 이 이야기를 통해 독립이 거창한 포부보다 때로는 하루를 견디는 용기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 '취업준비'는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가 각자의 불안을 마주하는 장면을 담아낸다. 자녀의 앞날을 위해 모든 것을 조심스레 선택해온 어머니와, 그 사랑이 때로는 무거운 부담이 되는 취업준비생. 서로를 위하고 있다는 진심이 역설적으로 간극을 만드는 현실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서숙희 배우와 김유나 배우의 호흡이 이 미묘한 감정의 결을 드러내며, 지금 한국 사회의 풍경 한가운데를 관객 앞에 놓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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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바람엔터테인먼트
세 이야기는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우리 삶을 붙드는 기본적인 감정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사진 속 익숙한 표정을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은, 그때와 지금이 다르면서도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조용히 환기한다. 독립을 향한 마음은 특정 시대와 특정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언저리에서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공연의 마지막,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직접 말을 건넨다. "독립이란, 단지 나라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매일 이어가야 하는 싸움 아닐까요." 선혈이 흐르던 시대의 투쟁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리는 선택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관객 스스로 질문을 이어가도록 돕는 장면이다. 극장을 나서는 길에서 문득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연극 '권애라'는 과거를 기념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독립의 형상에 주목한다. 불안하고 거센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이 미약한 실천들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했을지 모른다. 기억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다시 쓰이며, 미래를 향해 이어진다.

조용히 던져진 질문 하나가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떤 독립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잊힌 이름을 다시 불러내며, 지금 이 시대에 권애라라는 이름이 왜 여전히 필요한가를 우리에게 묻는다. 연극 '권애라'는 그 대답을 관객 각자의 삶 속에서 찾도록 남겨두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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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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