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역할도 AI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적 능력'과, AI 없이도 깊이 생각하는 '사고력'을 모두 갖춘 '양손잡이 인재'의 양성으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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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변화의 속도 또한 대학을 옥죄어 온다. 과거에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교수의 강의 노트보다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기술 변화로 인해 직무 기술의 유효기간(Half-life of skills)이 5년 미만으로 단축되었다고 보고했다. 대학이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대학 교육의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가장 위협적인 시그널은 기업 채용 시장에서 감지된다. 대학 간판보다 실무 역량을 우선시하는 '스킬 퍼스트(Skills-First)' 채용이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2024년 링크드인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약 60%가 학위보다 직무 기술을 우선하는 채용 방식을 도입했다. IBM, 구글, 테슬라 등 많은 글로벌 혁신 기업들은 이미 입사 지원 자격에서 학위 요건을 삭제했다. 실리콘밸리의 한 투자자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평범하다는 신호"라는 도발적인 발언까지 내놓고 있다.
교육 현장 내부의 딜레마도 심각하다. AI라는 강력한 도구 덕분에 학생들의 과제 결과물은 전보다 매끄럽고 화려해졌다. 그러나 정작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학생의 본질적인 사고력은 퇴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인간이 스스로 기억하고 처리해야 할 정보를 외부 도구에 전적으로 맡기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뇌의 인지 기능이 약화하는 것이다.
최근 MIT 미디어랩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AI 도구에 의존해 글을 쓴 집단은 스스로 사고하며 과제를 수행한 집단에 비해 뇌의 연결성이 현저히 낮게 나타났으며, 결과물에 대한 주인의식도 결여되어 있었다. AI가 정답을 떠먹여 주는 사이, 학생들은 '생각하는 근육'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많은 교수가 수업 중 AI 활용을 금지하는 고육지책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AI 활용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AI 활용 능력이야말로 미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필수 역량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AI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의 생산성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AI가 코딩을 자유자재로 하는 시대가 다가오며, 이 생산성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물론 AI 활용 능력 자체가 교육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가 완벽에 가까운 답을 제공하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답을 외우는 것에서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의 편향성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통찰력은 오직 AI 없이 깊이 사고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대학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이중 트랙' 전략을 취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AI를 도구로써 능숙하게 활용하는 능력'과 'AI 없이도 치열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키워주어야 한다.
AI 활용 능력을 위해서는 정답이 없는 현장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정책분석연습(Policy Analysis Exercise, PAE) 프로그램이 훌륭한 벤치마킹 사례다. 매년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가 자신들이 직면한 실제 난제를 학교에 제출하면, 학생들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 한 학기 동안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AI를 포함한 모든 도구를 동원해 현실의 복잡성을 돌파해야 한다.
AI 없이 사고하는 능력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고립'을 교육 과정에 배치해야 한다.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배제한 채, 오직 자신의 뇌와 펜 끝에만 의존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야 한다. 최근 북미권 대학들 사이에서는 타자기 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던 '블루 북(Blue Book)' 시험이 부활하고 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종이 위에 펜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전통적인 '튜토리얼(Tutorial)' 시스템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교수와 학생이 1대1 혹은 소수로 마주 앉아 토론으로만 논리를 검증하는 과정이다. 도구 없이 맨몸으로 문제와 부딪혀 논리를 세우는 훈련이 AI 시대에 각광을 받고 있다.
미래의 인재는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적 유능함'과, 도구 없이도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는 '인문적 단단함'을 모두 갖춰야 한다. 이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능력을 자유롭게 오가는 '양손잡이 인재(Ambidextrous Talent)'를 길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AI 시대 대학의 역할이 아닐까.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