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장 “총리실 직속 ‘국가방위자원산업처’로 승격 건의”
한·미 ‘핵추진잠수함 협력’ 기술·외교·전략 대전환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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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방부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는 그 분기점이었다. 방사청 내부의 문제의식이 처음으로 대통령 앞에서 직접 제기됐고, '청 단위' 조직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방산 환경 변화가 공식화됐다. 단순한 조직 확대 요구가 아니라, K-방산의 위상이 바뀌었음을 국가 차원에서 인정해 달라는 요구였다.
핵심은 역할의 전환이다. 한국 방위산업은 이미 '무기 만드는 나라'를 넘어섰다. 전차·자주포·전투기·잠수함·미사일 등 주요 플랫폼을 자체 설계·개발·운용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장 환경 전체를 설계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특히 AI, 데이터, 네트워크 기반의 전장 구조가 확산되면서 방산은 더 이상 국방부 단독의 행정 영역이 아니다. 외교, 산업, 에너지, 과학기술이 동시에 얽힌 국가 전략 산업이 됐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방사청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도 분명해졌다. 국방부 산하 '청' 단위 조직으로는 범부처 조정 권한이 부족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방산 시장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내부 평가가 누적돼 왔다. 방산 수출은 이제 무기 가격 경쟁이 아니라, 기술 이전, 현지 생산, 금융 패키지, 에너지·인프라 연계까지 요구하는 종합 국가 역량 경쟁으로 바뀌었다.
이 문제의식을 집약해 제시한 인물이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이다. 이 청장은 지난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방위사업청을 국무총리 산하의 '국가방위자원산업처(가칭)'로 격상하는 조직 개편안을 공식 건의했다. 단순 승격이 아니라, 방산을 국가 방위 자원과 전략 산업의 결합 영역으로 재정의하자는 제안이다.
이 청장은 특히 '방위산업청'으로의 명칭 변경이나 산업통상자원부 이관에는 선을 그었다. 방산을 단순 산업 정책으로 환원하는 접근은 한국이 쌓아온 군 운용 경험, 작전 개념, 전략 자산 관리 역량을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국무총리 산하로 격상해 외교·산업·에너지·과학기술 부처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날 보고에서 대통령의 반응도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련 내용을 경청하며 즉각적인 반대나 선을 긋지 않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역시 "여러 토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며 검토 가능성을 열어뒀다. 방산 거버넌스 개편이 단순한 부처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가 전략 차원의 논의로 격상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한·미 '핵추진잠수함 협력' 공식화라는 전략적 전환도 자리한다. 핵추진잠수함은 단일 무기 체계를 넘어 원자력, 조선, 방산 기술이 결합된 초대형 융합 프로젝트다. 이는 원전 산업과 조선 산업, 방산 산업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묶는 새로운 'K-원자력 생태계' 형성으로 이어진다.
또한 내년중으로 예정된 최소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CPSP) 수주를 위해서는 범정부차원의 국가적 총력지원이 필수적이다. 방사청이 기존 획득·조달 중심 조직에 머문다면, 이 같은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총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결국 이번 조직 개편 건의의 본질은 권한 확대가 아니다. K-방산이 이미 '글로벌 톱4'를 겨냥하는 단계에 진입한 만큼, 행정 체계 역시 그 위상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무기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전장을 설계하고 동맹과 산업을 연결하며 국가 전략 자산을 관리하는 체계로의 전환. 방사청의 '자기 부정'에 가까운 선언은 그 출발점이다.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K-방산을 여전히 '국방부 산하 조달 조직'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국가 총력전 체계의 핵심 축으로 격상할 것인가. 글로벌 방산 시장은 이미 답을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