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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부산콘서트홀 콘서트 오페라 ‘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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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12. 29. 14:20

정명훈의 섬세한 해석과 활력있는 연주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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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오페라 '카르멘'의 한 장면. /부산콘서트홀
1990년 여름,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바스티유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금의환향했던 지휘자 정명훈은 공연의 앙코르로 오페라 '카르멘' 서곡을 들려줬다. 당시 세종문화회관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번갈아 열린 다섯 번의 음악회는 모두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본 공연을 끝내고 땀범벅이 된 젊은 정명훈이 다시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카르멘 서곡을 지휘하던 모습이 몹시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올해, 정명훈이 지휘하는 '카르멘'을 다시 감상했다. 지난 6월 개관한 부산콘서트홀은 2027년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돼 클래식부산이 완전체를 갖출 때까지 부산의 오페라 열기를 위한 마중물 역할도 할 예정이다. 개관 페스티벌의 일환이었던 베토벤의 '피델리오' 콘서트 오페라도 높은 수준을 보여줬지만, 연말에 공연된 콘서트 오페라 '카르멘'(엄숙정 연출) 역시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프랑스 음악에 대한 정명훈의 남다른 깊이를 친숙하게 다가갈 좋은 기회이자, 테너 이용훈이 노래하는 돈 호세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배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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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오페라 '카르멘'의 한 장면. /부산콘서트홀
1990년 30대 중반의 젊은 지휘자는 이제 70세를 넘긴 거장이 됐지만 그가 세공한 '카르멘'의 음악은 변함이 없었다. 활기찬 팔놀림은 이제 최대한 절제된 움직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섬세한 표현력과 확실한 강약 조절로 이 오페라가 가진 극적 요소를 끌어내는 능력 또한 여전했다. 카르멘은 강한 사실주의적 연극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콘서트 오페라로 많이 공연되지 않는다. 부산콘서트홀 '카르멘'의 이러한 공간적 제약은 오히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성악가들도 연기보다는 음악적 표현력과 발성에 중심을 둘 수 있었고, 관객들도 시각적 효과보다 청각적 요소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서곡은 활기차게 시작됐다. 단조와 저음으로 무겁게 전환되는 부분에서도 처지는 느낌 없이 속도감 있는 전개로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강렬하게 예고했다. 아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Asian Philharmonic Orchestra, APO)는 이번에도 생기 넘치면서도 안정된 연주를 들려줬다. 도쿄필하모닉 악장 카오루 콘도(Kaoru Kondo)가 객원 악장으로 참여했고, 중국 국가대극원 교향악단의 마웨이지아(MA Weijjia)가 부악장, 비올라 수석에 김세준, 첼로 수석에 문태국 등 한·중·일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 단기간에 매끄러운 사운드를 만들었는데, 세계 유수 교향악단과 정상급 솔리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들려준 활력 있는 하모니는 어떤 오케스트라에서도 들어보기 어려운 독특함을 선사했다.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악기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선명했고,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의 두드러진 강약 대비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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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오페라 '카르멘'의 한 장면. /부산콘서트홀
플루트 등 관악기가 중요한 이 오페라에서 박지은 플루트 수석과 장톈위(ZHAG Tianyu) 클라리넷 수석, 후이이 리(Hui-Yi Lee) 호른 수석, 이현준 트럼펫 수석 등은 빼어난 기량과 빈틈없는 연주력으로 오페라를 뒷받침하고 때로는 강한 방점을 찍었다. 특히 3막 간주곡에서 들려준 박지은의 우아한 레가토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날 카르멘 역할은 캐나다 출신 메조소프라노 미셸 로지에(Michele Losier)가 맡았는데 압도적인 연주력을 보여줬다. 풍성하고 폭넓은 중저음에, 여성적 매력이 느껴지는 고음까지 겸비한 탁월한 메조소프라노라고 하겠다. 로지에는 1막 하바네라와 세기디야 등 카르멘의 대표적 아리아를 완벽하게 노래했고 2막 집시 댄스에서도 뛰어난 춤솜씨를 보여줘 객석의 극적인 몰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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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오페라 '카르멘'의 한 장면. /부산콘서트홀
테너 이용훈에게 이번이 오페라 '투란도트', '오텔로'에 이어 세 번째 국내 오페라무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날 오페라에서 그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1막부터 적극적인 연기로 돈 호세를 잘 그려낸 그는 2막 아리아 꽃노래에서 밀도 높은 음색에 서정성을 더해, 돈 호세가 왜 테너 이용훈의 대표적 역할인지를 입증했다. 미셸 로지에와 이용훈은 음악적 색깔이나 외모에서도 좋은 조화를 이뤄 극적 개연성을 높였다. 바리톤 김기훈 역시 특유의 윤택한 음색과 볼륨으로 패기 있는 투우사를 잘 표현했고 미카엘라 역할의 소프라노 카라 손(Kara Son, 손현경)은 리릭 중에서도 스핀토한 성격이 강한 그의 음색 때문인지 기존의 유약한 이미지와는 다른 강인한 미카엘라를 노래했다. 프라스키타 역할의 소프라노 이혜지도 능동적인 연기력과 안정적인 음성으로 자칫 묻히기 쉬운 카르멘의 친구를 입체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반년 만에 다시 찾은 부산콘서트홀은 여러모로 많이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개관 이후 6개월간 알찬 프로그램으로 쉼 없이 달려왔지만 부산 이외의 지역에는 그 성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 내년에는 부산콘서트홀이 전국구 공연장으로 한층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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