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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현지시간) 치러진 1차 투표 현장은 2015년과 2020년 총선 당시의 열기와는 딴판이었다. 뉴욕타임스(NYT)와 AP에 따르면 최대 도시 양곤과 만달레이의 투표율은 눈에 띄게 저조했다.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을 호소했다. 만달레이의 화장품 판매원 샌디 칫(34)은 "선거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문제를 피하기 위해 나왔다"며 "이곳의 많은 사람은 희망이 아니라 공포 때문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공무원인 와이 얀 아웅(42) 씨 역시 "사무실에서 투표 참여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전했다.
반면 수도 네피도의 분위기는 달랐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투표 직후 보라색 잉크가 묻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군이 관리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임을 보장한다"고 강변했다. 친군부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자체 집계 결과 네피도 전 의석을 석권하는 등 하원 102석 중 88석을 휩쓸었다고 주장했다.
공식적인 선거 결과는 1월 말에나 발표될 예정이지만, 지역별 개표소 상황을 종합할 때 USDP의 독주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미얀마 의회는 상·하원 합쳐 총 664석으로 구성되는데, 헌법에 따라 군부가 25%를 자동으로 가져간다. 여기에 USDP가 이번 선거를 통해 과반을 확보하면, 군부는 차기 대통령 선출권을 포함해 입법·행정 전반을 완벽하게 장악하게 된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아웅산 수치가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가 해산된 빈틈을 타 '현실론'을 주장하는 소수 야당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가였던 코 코 지 국민당 후보는 "군부를 정치에서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군부 독주를 조금이라도 견제하려면 선거 참여가 가장 실용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회가 구성되면 민 아웅 흘라잉 1인에게 집중된 권력을 일부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카인인민당(KPP)의 난트 킨 아예 우 의장 또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며 선거 참여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국민통합정부(NUG) 등 저항 세력은 이들을 "국가의 적과 협력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비난하고 있어 야권 분열의 불씨도 남겼다.
선거 당일에도 폭력 사태는 멈추지 않았다. 군부는 사가잉 지역 킨우 타운십에 공습을 가해 9명을 사살했고, 미야와디의 USDP 사무실과 만달레이 투표소에서는 폭발 사고가 발생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경제 상황도 최악이다. 2020년 이후 미얀마 경제는 9% 역성장했고, 군부가 전비 마련을 위해 30조 짯(약 9조 원)을 찍어내며 물가상승률은 34%까지 치솟았다.
국제사회의 셈법은 복잡하다. 중국은 내전 종식을 위해 군부에 선거 실시를 압박해 왔다. 주목할 점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다. NYT는 서방 세계가 이번 선거를 규탄하는 것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계획은 미얀마의 진전을 의미한다"는 묘한 입장을 내놨다고 전했다. 이는 미얀마를 '국제적 왕따' 국가로 남겨두기보다, 선거를 통해 최소한의 관리 가능한 체제로 편입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30일 기자회견에서 "아세안 지도자들은 미얀마 상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할 것"이라면서도 뼈 있는 경고를 날렸다.
안와르 총리는 "평가는 폭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그리고 분열을 심화하거나 (군정에) 성급한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군정이 이번 선거를 근거로 합법 정부를 자처하려는 시도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향후 2차(1월 11일)·3차(1월 25일) 투표가 남아있지만, USDP의 독주 체제가 굳어진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인정 여부가 미얀마 사태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