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관객 시대 전제 재편, 중급 영화 생태계 붕괴 여파
물량 경쟁 대신 완성도…재편 국면 맞은 극장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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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극장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봉 편수 축소다. 롯데컬쳐웍스·쇼박스·CJ ENM·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NEW 등 국내 주요 배급사들이 선보일 한국 영화는 22편 안팎이지만 과거와 같은 물량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상당수 작품은 개봉 시점을 넘겨온 이른바 '창고형 영화'로, 신규 기획보다는 이미 제작을 마친 영화들을 정리하는 성격이 짙다.
이 같은 라인업은 배급사들의 전략 변화와 맞닿아 있다. 올해 주요 배급사들은 개봉작 수를 줄이는 대신 장르물이나 지식재산(IP) 확장이 가능한 무게감 있는 상업영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을 택했다. 양보다는 핵심 작품 위주의 라인업으로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해 영화계의 상황과도 이어진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5년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총 1억492만2362명으로 집계됐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2021년 이후 4년 만에 연간 누적 관객 1억 명을 넘기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론이 제기됐으나 연말 '주토피아2' '아바타:불과 재' 외화 흥행에 힘입어 1억 명 선을 가까스로 넘겼다. 극장가가 체감한 불안감이 수치로 확인된 한 해였다.
관객 감소의 여파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됐다.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고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다수의 극장이 문을 닫았다. 상영 공간 축소는 선택지 감소로 이어졌고 이는 관객 이탈을 가속하는 악순환으로 작용했다.
구조적 원인도 분명했다. 코로나19 이후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영화 제작 투자를 크게 줄였고 흥행 가능성이 검증된 프로젝트에만 자본이 집중됐다. 손익 예측이 어려운 중급 규모 영화는 설 자리를 잃었고, 이를 떠받치던 중소 배급사들 역시 상당수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실제로 투자·배급사가 참여한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한국 영화는 10여 편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중급 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해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예산을 확대했지만, 제작에서 개봉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올해 극장가에 즉각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당장의 영화 가뭄 해소보다는 중장기 구조 개선을 겨냥한 처방에 가깝다.
결국 극장가의 위기는 흥행 성적이나 개봉 편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객 이탈은 소비 환경의 변화라기보다 영화 산업 전반의 기획과 유통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흥행 가능성이 검증된 선택이 반복되는 동안 영화의 다양성과 실험성은 점차 약화됐고, 그 공백을 OTT 콘텐츠가 빠르게 메웠다. 관객이 극장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극장이 제공할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든 결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올해는 이 구조가 더 이상 유예될 수 없는 시점이다. 개봉 편수 축소와 핵심 작품 중심 전략은 위기 속에서 선택한 방어적 대응이지만 동시에 극장 영화가 어떤 언어와 기획으로 관객을 다시 설득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선택과 집중이 설득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극장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시장이 더 빠르게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 영화 관계자는 "이제 극장가는 얼마나 많은 영화를 내놓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관객이 '왜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가'를 납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올해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극장 산업의 규모와 역할이 다시 한 번 재정의될 수밖에 없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