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미, 베네수 ‘조기 민주화’엔 선 긋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105010001482

글자크기

닫기

김도연 기자

승인 : 2026. 01. 05. 10:47

마두로 축출에도 정권 골격 유지…베네수 민심 혼란
WSJ "트럼프, 민주보다 안정·석유 이해 우선"
USA-VENEZUELA/
베네수엘라 민병대 조직으로 알려진 '콜렉티보스(Colectivos)' 소속 대원들이 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체포한 이후에도 베네수엘라의 조기 민주화에는 거리를 두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두로 축출을 반기는 분위기 속에서도 권력 구조와 통치 체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우려가 베네수엘라 사회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두로 체포의 배경으로 마약 밀매와 범죄 조직 유입, 미국 석유 기업 자산의 국유화 등을 언급했지만,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회복이나 선거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이 "안전하고 적절하며 신중한 전환"이 이뤄질 때까지 베네수엘라를 관리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무기한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의 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마차도가 대중적 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대신 마두로의 측근이자 부통령이었던 델시 로드리게스와 협력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현재 최고법원의 승인 아래 과도 대통령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관련,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최근 미 방송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의 즉각적인 민주화 복귀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차베스 전 대통령이 구축한 차비스모 체제가 수십 년간 국가를 지배해왔다는 점을 들어, 마두로 체포 직후 선거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WSJ은 미국의 당면 목표가 민주주의 이행보다는 정권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에 대한 봉쇄 조치와 추가 군사 행동 가능성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마약 밀매 차단과 외국 세력 배제, 석유 산업 재편을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모이세스 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WSJ에 "마두로가 축출됐다는 환희와, 총과 부패의 구조가 여전히 국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실망감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카라카스의 시민운동가 라파엘 바네가는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맞춰 일부 정책을 수정하더라도 이는 국민의 선택이 배제된 '외부 강요'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변화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기대해온 민주적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래리 검비너 전 미 국무부 고위 관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민주주의보다 '안정 관리'를 우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마두로만 제거한 채 기존 권력 구조를 유지하면서, 미국 석유 기업의 재진출과 마약 차단 등을 조건으로 협력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조기 민주화가 어려운 구조적 이유로는 군과 치안 기관의 충성 구도가 꼽힌다. 이들은 마두로와 우고 차베스 집권기 동안 광범위한 부패의 수혜자였으며, 대규모 미군 개입 없이는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로드리게스 과도정부 역시 국방장관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내무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 등 강경파의 지지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대통령의 영구적 공백 시 30일 이내 대선을 규정하고 있지만, 친정권 성향의 대법원은 '비상 상황'을 이유로 해당 조항의 적용을 유보했다. 이에 따라 로드리게스 체제의 통치 기한은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태다.

WSJ은 베네수엘라 사태가 단기간에 민주화로 이어지기보다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통제 아래 '관리되는 전환' 국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는 마두로 이후를 기대했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또 다른 불확실성으로 남고 있다는 평가다.
김도연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