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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령사회 의료 최전선에서 변화 이끌 노인의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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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12. 13:47

[이미지1] 강남베드로병원 윤강준 대표원장
윤강준 강남베드로병원 대표원장
2023년 말쯤의 일이다. 백발이 성성한 95세 어르신이 아들의 부축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섰다. 4, 5번 요추부 척추관협착증을 앓는 환자로, 재활 의지가 높았지만 약물과 주사 치료만 몇 년째 반복해 온 상황이었다. 지금껏 수술을 미룬 까닭을 묻자 "그 연세에 뭐하러 수술을 받느냐, 그냥 참고 사시라"는 말을 계속 들어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의 재활 의지가 충분히 반영되기 힘든 고령 환자 치료의 현실을 체감한 동시에, 80세 이상 환자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고령특화치료전담팀(TF)을 구상하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노년기 질환과 통증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인프라 부족과 위험부담 탓에 치료 포기를 권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인구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서 이런 고정관념은 바뀌어야 할 숙제다. 2024년 고령자 건강보험 진료비는 52조 1935억원으로, 전체의 약 45%에 달한다. 노인 가계 지출 내에서도 의료비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의 적극적 치료를 회피하는 구조는 사회적, 개인적 의료비 부담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비용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건강 관련 삶의 질(HRQoL)은 자아존중감, 우울도, 사회 활동 참여, 삶의 만족도 등 노후의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노인 환자들의 치료 의지가 과거에 비해 높아진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건강하고 자립적인 노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의료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결과다. 노년기 보건의료는 점점 더 존엄한 노후를 지탱하기 위한 필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1909년 이그나츠 레오 나셔 박사가 창안한 노인의학(Geriatrics)은 노인의 신체적 특성에 맞춰 노년기 질병과 치료법을 별도 분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을 기초로 한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노인의학을 기초로 다양한 의료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노인의학의 현장 적용에 더욱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의료 최전선에서 노인 환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지역 1·2차 의료기관의 역할이다. 이들을 통해 환자 상태에 대한 표준화된 평가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고령 친화 진료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소규모 병원이라 하더라도, 다학제적 협진 관점에서 노인 치료법을 고민하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단순히 한가지 질환을 잘 고치는데 그치지 않고 복합질환 및 약물 복용 현황, 노년기 신체적 특성, 정서적 환경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1·2차 의료기관에 특화된 노년기 의료 시스템의 육성과 보급이 선행돼야 한다.

노인 진료와 수술 경험 축적은 그 자체로 고령 환자 치료 과정을 더욱 정교화, 효율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에는 고령 수술의 가장 큰 산으로 여겨지던 마취 부문 역시 안정성이 향상되는 추세다. 우리 병원도 고령특화치료전담팀을 1년 넘게 운영해오며, 고령 환자 맞춤형 마취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고도화하는 동시에 이를 통한 수술 성공 사례를 지속적으로 쌓아가고 있다.

WHO는 노화로 인한 신체적 기능 저하를 어쩔 수 없는 당연한 현상으로 여기고 예방이나 치료를 꺼리는 것을 자기 자신에 대한 '연령차별주의'의 한 형태로 설명하고 있다. 건강하게 나이 들고 존엄한 노후를 누리는 것은 모두의 권리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화가 건강을 포기하고 고통을 견디는 길이 아니라, 삶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의료 현장 일선의 노인의학의 육성과 적용은 초고령사회에 꼭 필요한 과제다.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삶의 질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방향으로 노년기 진료 모델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이 한 걸음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노후를 더욱 존엄하게 만들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윤강준 강남베드로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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