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입맞춤의 여러 의미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11101000484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1. 11. 17:41

김주원_20241228_160214
Rene Magritte, The Lovers, 1928, Oil on Canvas, 54 x 73.4cm, Gift of Richard S. Zeisler, 1998,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oMA 컬렉션 /사진제공 김주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그림 '연인들II(The Lovers/Les Amants)'(1928)은 입 맞추는 남녀의 모습을 대담하게 담아내며 사랑 혹은 연인을 환유하고 있다. 누군가와의 입맞춤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입맞춤, 사랑, 사랑하는 사람, 나의 연인… 그런데 마그리트의 그림 속 입맞춤은 여느 연인의 모습처럼 달콤함, 뜨거움, 행복감 등의 감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지 않다. 영화의 스틸컷과 같은 구성의 단순한 화면은 남녀로 생각되는 두 사람의 입맞춤을 클로즈업하지만, 얼굴에 흰 천을 덮어쓴 채 입 맞추는 연인의 모습은 사랑보다는 애틋함, 슬픔, 이별, 외로움, 죽음 등등의 비장감을 풍기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흰색으로 몰딩된 천정과 인물 뒤편 푸른 회색 벽, 이와 대비되는 오른편의 붉은색 나무 벽의 건축적 구조의 배경에 의해 배가되고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 '연인들II'는 1928년에 제작된 네 점의 연작 중 하나다. 뉴욕현대미술관(약칭 MoMA)이 소장하고 있는 '연인들II'는 컬렉터 리처드 S. 자이슬러가 미술관에 기증한 이후 지금도 상설 전시되고 있다. 마그리트는 네 점의 '연인들' 가운데 흰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연인을 묘사한 그림을 두 점 그렸다. 호주국립미술관 컬렉션인 '연인들I'이 그것이다. MoMA의 '연인들II'와 같은 의상을 입고 나란히 서 있는 남녀의 상반신 전체를 묘사한 그림으로 마치 자신들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하는 듯한 영화 장면처럼 애틋하다. 두 그림 모두, 넥타이를 맨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성과 민소매의 붉은 옷이 매혹적인 여성이 모티프이며, 최소한의 배경과 구도로 보는 이의 시선은 연인에게 집중된다.

많은 미술비평가들은 이 그림'연인들'이 덮어쓰고 있는 흰 천을 주목하였다. 미술사학자 수지 개블릭(Suzi Gablik)은 머리를 천으로 덮은 이 설정에 대해 두 가지 의미 있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그중 하나는 영화의 스틸 이미지고, 다른 하나는 마그리트가 어린 시절에 겪은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마그리트는 그의 초현실주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1913년 소설로 처음 출간되고 얼마 후 루이 푀이야드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1914)된 스릴러 시리즈의 주인공인 '팡토마(Fantomas)'에 매료되었다. '팡토마'는 머리에 스타킹이나 헝겊을 뒤집어쓴 채 변장한 모습으로 등장한 완전 범죄자다. 작품 속에서 끝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팡토마'의 이미지를 차용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마그리트가 13세일 때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어머니의 건져 올린 시신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다. 어린 마그리트는 익사한 채 발견된 어머니의 주검을 직접 보았고, 시신이 수습되었을 당시 잠옷이 어머니의 얼굴에 감겨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비극적인 기억은 소년 마그리트에게 지독하고 강렬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마그리트는 상징, 수수께끼 같고 은유적인 이미지, 때로는 유머러스한 이미지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사랑, 연인의 환유로서의 입맞춤이 흰 천에 가려진 것은 입맞춤이 함의하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에게 사랑은 그 형태가 다양하지만, 대개 강렬하고 뜨거운 욕망, 고조된 행복감, 따뜻한 편안함이라는 미화된 통념을 가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환상과 지독한 현실은 늘 함께 존재해 왔다. 마그리트는 현실이 겪어내야 할 사랑의 뒷모습 가운데 애틋함, 슬픔, 이별, 외로움, 죽음 등 사랑의 불완전함도 매혹적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그림 '연인들'은 사랑이든 행복이든 그 아름다운 감정들은 현실과의 경계 속에서 서성이고 모호할 수 있는 실체이거나 실체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어쩌면 한국영화 최초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의 다큐멘터리 작품 '위로공단' (2014) 속에 마그리트의 그림 속 이미지와 같은 흰 복면을 쓴 두 여성 노동자의 등장은 같은 문제를 시사한다. 대한민국 산업화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찬란하고도 슬픈 노동의 역사를 사려 깊은 시선으로 담아 낸 영화 속 노동자들의 생존과 가족을 위한 눈물, 분노, 감동 등의 일상은 마그리트의 '연인들'이 나누는 입맞춤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입맞춤을 둘러싼 여러 의미를 생각해 본다. 어찌 입맞춤뿐이겠는가! 적어도 올해엔 내가 누군가를, 누군가 나를 이해했다고 단정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여러 의미가 숨어 있다.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