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밴스, 김 총리에 의미 있는 긴장 완화 강력 요구"
"美 테크 기업 겨냥한 韓 규제에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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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규제 관행에 대해 단순한 우려를 넘어선 '경고(warning)'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는 불과 4일 전인 지난 23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워싱턴 D.C. 한국대사관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J.D. 밴스 부통령과의 회담 결과에 대해 "미국 측의 오해를 풀었고 상황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밝힌 것과 결이 다르다. 서울이 '외교적 성과'를 자평하는 사이, 워싱턴은 냉혹한 '청구서'를 준비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 백악관 "한국, 더 낮은 관세만 챙기고 진전 없어"
백악관 관계자는 이날 한국 언론의 질의에 대해 "단순한 현실은 한국이 더 낮은 관세를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하했지만, 한국은 그 대가로 자신들이 하기로 한 약속(end of the bargain)을 이행하는 데 있어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이 언급한 '진전 없는 약속'은 지난해 10월 29일 경주에서 한 한·미 정상이 합의한 3500억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대(對)미국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대미투자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의미한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12월 4일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소급 인하하며 선제적 조치를 취했지만, 한국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이를 '합의 위반'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복원' 선언으로 구체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 입법부가 미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자동차·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나는 2025년 7월 30일 양국을 위한 위대한 합의를 체결했고, 10월 방한 당시 그 조건을 재확인했다"며 "그런데 왜 한국 입법부는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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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은 이날 보도에서 미국의 불만이 단순한 입법 지연뿐만 아니라, '쿠팡' 등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한국의 규제 움직임과 깊게 연동돼 있음을 시사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미국 테크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와 조사를 중단하라고 경고했다"면서 "밴스 부통령은 김 총리에게 '미국 측은 한국 정부가 쿠팡 등 테크 기업을 대하는 방식에서 의미 있는 긴장 완화(de-escalation)를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김 총리가 특파원 간담회에서 전한 설명과는 결이 다르다. 당시 김 총리는 밴스 부통령과의 회담 직후 "쿠팡 이슈와 관련해 오해를 불식시켰고, 밴스 부통령도 '한국 내 법적 절차를 이해한다'며 상황을 잘 관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총리는 '현대차 조지아 공장' 급습 사례를 들며 "쿠팡 건 역시 약 337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논리로 설득했고, 밴스 부통령이 한국 상황을 이해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WSJ의 보도에 따르면, 밴스 부통령과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는 '이해'가 아닌 '행동 요구'였다. WSJ는 "밴스 부통령이 명시적인 위협을 가하진 않았지만, 그 함의는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조치가 계속될 경우 무역 합의가 깨지고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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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각차는 미국 의회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의 공화당 측은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글을 공유하며 "이것은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들을 부당하게 겨냥할 때 발생하는 일"이라고 썼다.
한국 정부는 쿠팡 사태 수사를 '속지주의에 입각한 사법권 행사'로 보지만, 미국 조야는 이를 자국 기업에 대한 '부당한 표적 수사'이자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WSJ는 쿠팡을 '아마존과 유사한 미국 기반 이커머스 기업(U.S.-based e-commerce company)'으로 규정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 내에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럴드 로저스 쿠팡 임시 최고경영자(CEO)가 경찰 조사를 피해 출국한 것을 두고도, 한국에서는 '도피'로 보지만 미국 언론은 부당한 탄압을 피한 조치로 해석하는 기류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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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 배경에는 경쟁국인 일본과의 비교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이 지난해 7월 미국과 무역 협상에 합의한 이후, 국회 비준 없이도 대미 투자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약 79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뒤, 합성 다이아몬드 생산 시설과 대규모 발전 프로젝트 등을 '1호 투자 안건'으로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로이터는 "미국과 일본은 3월 하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방미 이전에 투자 안건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입법부가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난할 명분을 제공했다.
◇ 전문가 "가혹한 거래주의… 관세 카드, 협상용일 수도"
미국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재인상 발표가 한국의 양보를 더 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협상 전술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이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입법 움직임을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의 확산으로 보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쿠팡 사태를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톰 라마지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행을 고려하면 한국이 더 많은 양보를 제시하게 하기 위한 협상 전술일 수 있다"면서도 "이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행정부가 그린란드를 요구하며 EU를 압박했던 사례를 볼 때, 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이 최종 결론인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서둘러서는 안 되며, 미국 연방대법원의 관세 적법성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트럼프 외교정책의 운용 방식은 가혹한 거래주의"라며 "행정부는 지렛대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한미국대사 대리를 지낸 로버트 랩슨은 "한국이 할 수 있는 실용적인 대응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화해 합의가 여전히 이행되고 있음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