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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조 대어’ 압구정서 기 못펴는 래미안…잇단 입찰 포기로 조합원 불신도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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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준 기자

승인 : 2026. 01. 28. 18:38

상반기 중 3·4·5구역 나란히 시공사 선정 예고
현대vs삼성 '이파전' 예상…삼성 열세 점치는 시각 다수
압구정 일대 1만가구 중 현대그룹 61% 시공…삼성 '0'
삼성, 개포·잠실·압구정서 잇단 입찰 포기 전력
압구정 재건축 구역
올해 상반기 사업비만 총 11조원에 달하는 압구정 3·4·5구역(이하 압구정 생략)이 잇따라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건설부문 간 '이파전'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삼성물산의 '래미안' 브랜드가 조합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970~1980년대 현대그룹 계열사가 압구정 일대 약 1만 가구 중 60% 이상을 시공하며 시장 전반에 '압구정=현대' 공식을 굳힌 반면, 삼성물산이 시공한 단지는 단 1가구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도시정비사업 부문에서 7년 연속 수주 1위를 기록해 온 데다, 지난해 2구역 시공권을 확보하며 추가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점 역시 이러한 평가에 힘을 싣는다. 삼성물산이 과거 강남·개포는 물론 압구정에서도 입찰 참여 의사를 밝혔다가 돌연 철회한 전례도 변수다. 3·4·5구역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삼성물산이 또다시 입찰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한 분위기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3·4·5구역 재건축 조합은 각각 오는 5월 중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구역별 공사 규모 및 예상 총공사비는 △3구역 3934→5175가구, 7조원 △4구역 1341→1664가구, 2조3000억원 △5구역 1232→1401가구, 1조7000억원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건설사 '톱2'로 꼽히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간 '양강 구도'로 흘러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반적으로 삼성물산의 열세를 점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대건설이 2019년 이후 7년 연속 연간 정비사업 수주 1위를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9조2622억원의 정비사업을 수주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10조5108억원 규모의 시공권을 확보한 현대건설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현대건설이 지난해 9월 2조7489억원 규모의 2구역 재건축 사업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따낸 점도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부담 요인이다. 현대건설은 2023년 12월 조직개편을 통해 도시정비영업실 산하에 '압구정 태스크포스(TF)팀'을 신설한 데 이어, 지난해 3월 확대 개편을 통해 이를 '압구정 재건축 영업팀'으로 승격하는 등 전사적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 2구역을 일대 추가 수주의 핵심 교두보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건설은 2구역에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THE-H)'를 적용하는 대신, 기존 정체성을 살린 '압구정 현대' 명칭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과 부동산 시장 전반에 굳어진 '압구정=현대'라는 인식을 적극 활용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실제 1970~1980년대 압구정 일대에 지어진 1만335가구 규모 아파트 중 현대건설과 한국도시개발(현 HDC현대산업개발) 등 현대그룹 계열사가 시공한 물량은 6335가구로, 전체의 61.3%에 달한다. 반면 삼성물산이 압구정 일대에 시공한 단지는 단 1가구도 없다.

압구정 재건축 삼성물산
서울 강남구 압구정4·5구역 인근 압구정파출소 버스정류장에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재건축 수주 홍보용 옥외광고가 설치돼 있다./전원준 기자
이에 맞선 삼성물산 내부에서도 고육책을 감수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4구역 수주를 위해 그동안 강남권·용산 등 핵심 입지에서도 한 번도 꺼내들지 않았던 '책임준공' 카드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물산이 그동안 막강한 래미안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정비사업 시장에서 '슈퍼 을(乙)'로 군림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정해진 공기 내 준공을 공식적으로 약속하는 방식이다. 공사비 급등이나 자재 수급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공사를 중단할 수 없고,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손해배상이나 채무 인수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족쇄'에 가까운 셈이다.

삼성물산은 4구역과 5구역 사이에 위치한 압구정파출소 버스정류장에 '과거의 압구정을 넘어서는 건 오직 압구정 삼성입니다'라는 문구의 옥외광고를 내건 상태다. 상대적으로 '현대'의 색채가 옅거나 없는 4·5구역 수주에 승부를 걸겠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4·5구역 통합 재건축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그동안 직면해 왔던 이른바 '조합 길들이기' 논란이 압구정 재건축 수주전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지난해 2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 막판에 불참하면서 조합원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조합원들로서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간 경쟁을 통해 보다 유리한 사업 조건을 제시받을 기회가 사라졌던 셈이다. 삼성물산은 당시 2구역 조합이 제시한 입찰 조건이 불합리했다고 해명했지만,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을 상대로 승산이 낮다고 판단해 1000억원 규모의 입찰보증금을 납부하느니 차라리 입찰을 포기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삼성물산의 입찰 포기 논란은 압구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초 강남구 개포주공 6·7차 재건축 시공사 선정 입찰에 관심을 보이다가 끝내 참여하지 않았고, 송파구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에서는 경쟁입찰을 이유로 입찰지침 변경을 요구하다가 끝내 응찰에 나서지 않았다. 중구 신당10구역에서도 단독 입찰 의지를 내비쳤다가 공사비 문제를 이유로 발을 뺐다. 업계에서는 래미안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간보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압구정급 초대형 정비사업지에는 다수의 대형 건설사들이 수주전에 뛰어드는 만큼, 브랜드 경쟁력이나 조합 측에 유리한 사업 조건은 물론 조합원들에 대한 신뢰도 확보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압구정 재건축 조합 고위 관계자도 "삼성물산이 과거 2구역에서 입찰을 철회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는 오히려 입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삼성물산이 또다시 입찰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삼성물산이 압구정 재건축 수주전에서 열세를 뒤집지 못하고 일정 수준의 성과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면, 향후 성수·목동·여의도 등 주요 정비사업 수주전에서도 브랜드 경쟁력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전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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