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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라이브러리의 힘은 '도서관'이라는 형식이 내포한 지식, 교양, 큐레이션,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을 들여 머무르는 경험'에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시대에, 도서관이 제공하는 느리고 깊이 있는 경험은 그 자체로 '럭셔리'다. 현대카드는 이러한 경험을 금융서비스에 이식함으로써 현금을 대체하는 결제수단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브랜드의 격'을 공간화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할인이나 적립 혜택이 아닌 브랜드만의 독보적인 감각을 설계했다.
현대카드의 공간 전략은 주제의 세분화와 동네의 정체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서 시작한다. 북촌의 디자인 라이브러리, 이태원의 뮤직과 아트 라이브러리, 도산의 쿠킹 라이브러리 등은 그저 도서관을 나눠놓은 게 아니다. 현대카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라이프 스타일 주제를 특정 지역에 펼친 것이다. 이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인 메시지를 뿌리는 대신, 취향과 관심사를 기준으로 고객을 정교하게 나누고 관계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곳이 '학습형 공간'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문자는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둘러보고 탐색하며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취향 기준을 구축하게 된다. AI가 패턴을 학습하며 진화하듯, 사람들도 이 공간에서 경험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 학습한다. 이렇게 자신만의 기준을 진화시킨 고객은 더 명확하게 움직이고 그 브랜드에 더 오래 머문다.
라이브러리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지식과 정보를 쌓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행동'으로 확장된다. 뮤직, 아트, 디자인, 쿠킹, 트래블과 같은 언어들은 단지 분류가 아니라 듣고, 감상하고, 실행하며 계획하는 오감의 체험으로 이어진다. 기업 관점에서 브랜드 자산은 단순히 고객의 호감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결국 특정 행동이 반복될 때 비로소 자산이 되는데, 라이브러리는 바로 그 행동의 반복을 유도하는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카드 시장의 전통적인 문법인 '혜택 경쟁'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할인율이나 적립률 경쟁은 비용 부담이 크고 경쟁사가 쉽게 따라 할 수 있지만,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브랜드 감각'은 복제할 수 없다. 이제 고객에게 카드는 단순한 결제 도구를 넘어 자신의 취향과 격을 상징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증표가 된다. 현대카드는 '카드를 쓰는 행위' 자체를 더 정돈되고 세련된 방식으로 재구성한 셈이다.
현대카드는 라이브러리를 통해 소비가 문화적 접근을 기반으로 하는 '선진국형 소비'로 이동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선진국형 소비란 단순히 값비싼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고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취향을 축적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소비를 말한다. 경험과 기준을 사는 이러한 소비 방식을 현대카드 라이브러리가 가능하게 한다.
또한 현대카드는 '접근권(Access)' 중심의 멤버십 구조를 통해 카드의 효용을 재정의했다.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 소지자라는 특정 자격을 갖춰야만 입장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한 출입 제한이 아니다. 소유보다 참여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어디에 들어갈 수 있는가"는 브랜드 경험을 결정하는 강력한 요소다. 현대카드는 할인 쿠폰보다 강력한 '경험의 문'으로 카드의 가치를 높였다.
이러한 공간 전략은 궁극적으로 온·오프라인이 연결된 '플랫폼 경영'으로 완성된다. 플랫폼은 단순히 앱이나 공간 하나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누적되고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된다. 오프라인에서 축적된 경험은 온라인 콘텐츠 소비로 이어지고, 강화된 관심은 다시 오프라인 방문이라는 루틴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은 일회성 비용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가 된다.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코호트(cohort) 집단이 형성하는 '코호트 효과'는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상품이 아닌 강렬한 경험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라이브러리에서 경험한 감각적인 장면들은 훗날 브랜드 선호도로 이어지므로 단기 매출보다 훨씬 강력한 기업의 자산이 된다.
결국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취향을 학습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고도의 설계도다. 도서관이라는 세련된 형식을 통해 브랜드의 격을 높이고, 카드를 라이프 스타일의 상징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향후 카드사 간의 경쟁은 단순히 어떤 혜택을 더 주느냐가 아니라, 이처럼 고객의 행동과 관계를 축적하는 '플랫폼 설계 능력'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
서울대 미대 졸업. 영국 런던대학교(UCL The Bartlett)에서 도시건축이론으로 석사 졸업, 박사과정 수료. 현재 여러 중앙정부의 도시·문화 관련 사업을 컨설팅하고 여러 지자체의 재생사업들의 총괄(PM)을 맡고 있다. 서울대·연세대·단국대에서 도시재생·건축계획·문화공간기획 등을 강의. 2016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표창, 2019 경기도 도지사상 표창.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희 ㈜이가디자인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