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통제 벗어난 결정 권한 필요
실질적 경제 생태계 구축도 중요
정책의 창은 열렸고 결단은 시작됐다. 하지만 문을 여는 것과 그 안에서 새로운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여러 지역에서 통합 논의가 결단 단계로 급격히 진입하면서, 이제 시선은 이 선택이 일회성 정치 이벤트로 끝나지 않게 할 실질적인 '생존 조건'으로 옮겨가고 있다.
첫 번째 조건은 '재정 규모'보다 '재정의 자율성' 확보에 있다. 정부의 최대 20조원 규모 재정 지원은 강력한 유인이지만, 중앙정부가 내려보낸 재원을 집행만 하는 구조로는 통합 동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성패는 중앙에서 얼마를 받느냐보다, 지역이 무엇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통합을 단순한 '지원 사업'이 아닌 '권한 재배치'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산업 정책 설계와 예산 편성의 실질적 자율권이 특별법으로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행정 구역만 넓어진 채 기존의 비효율적 구조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 통제에서 벗어난 결정 권한이 통합 이후를 버틸 최소 조건인 셈이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정책의 창은 정치적 결단으로 열리지만, 그 창을 닫히지 않게 만드는 힘은 주민들이 느끼는 변화의 실감에서 나온다"며 "통합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없으면 논의는 다시 정치적 수사와 갈등의 영역으로 후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지점에서 '기능적 결합'의 중요성도 부각된다. 행정 조직 합병을 넘어 각 지역의 강점을 연결해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할 경쟁력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광주의 인공지능(AI) 인프라와 전남의 에너지를 결합하는 구상처럼, 통합 이후 무엇을 함께 키울지에 대한 기능적 합의가 최소한의 설계도로 제시돼야 한다.
이런 결합 구상이 불분명하면 통합 이후에도 지역 간 주도권 다툼이 반복될 우려가 크다. 단순한 규모 확대를 넘어 통합을 통해 인구와 산업이 머무를 수 있는 실질적인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가 통합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된다.
결국 통합 논의의 마지막 관문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설정이다. 정책의 창이 열려 있는 지금, 무엇을 나중으로 미루고 무엇만큼은 현재 확실히 합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중앙의 지원을 제도적 자율권으로 치환하고 이를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는 설계가 결단의 효과를 좌우한다.
김용민 송원대 교수는 "행정통합은 단순 구역 조정을 넘어 지역의 생존 전략을 다시 짜는 작업"이라며 "결단 이후의 성패는 주민 체감형 기능적 시너지를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입법·재정적 자율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