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건축가 송정숙 관장 설계 ‘종로아트홀·다나갤러리’… ‘롱파취화’ 그룹전으로 문화 공간 첫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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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인근, 청계천에서 한 블록 들어선 곳에 자리한 종로아트홀과 Gallery Dana (송정숙 관장)가 바로 그런 공간이다. 산책길에 잠시 들른 이곳에서 관객들은 미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도심의 예술 살롱' 같은 문화의 향기를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7일 '롱파취화(弄波翠華) 제2회 정기 그룹전' 폐막 행사가 열렸다. 전시 종료를 기념해 열린 음악회와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이 함께 마련되면서 갤러리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 이상의 문화 교류의 장으로 변했다.
이번 전시는 모니카 오, 박유하, 박희열, 서정일, 아세움, 조가람 등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그룹전이다. 2월 10일부터 3월 10일까지 진행된 전시는 자연과 인간의 감성,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다양한 회화적 언어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서정적인 시각적 풍경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인 '롱파취화(弄波翠華)'는 문자 그대로 '푸른 물결과 꽃을 희롱한다'는 뜻을 지닌다. 자연의 흐름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술적 감각으로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의미를 담은 시적 표현이다. 참여 작가들은 서로 다른 화풍과 색채를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감정을 화면 위에 풀어내며 하나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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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최재혁, 바리톤 최상규, 메조소프라노 김소영, 소프라노 주희원이 무대에 올랐고, 피아니스트 박해경이 반주를 맡았다.
이들은 이탈리아 가곡 'Musica Proibita(금지된 노래)'와 나폴리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 오페라 Carmen의 대표 아리아 '하바네라', 그리고 오페레타 Giuditta의 'Meine Lippen, sie kussen so heiß' 등 유럽 성악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클래식 성악의 깊은 울림이 갤러리 공간을 채우면서 관객들은 전시 작품과 음악을 동시에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공연 이후에는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관객과 작가들이 작품 앞에서 창작 과정과 작품 세계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작품을 둘러싼 대화가 이어지며 갤러리 공간은 자연스럽게 작은 문화 공동체의 장으로 변했다.
최근 서울의 소규모 갤러리들은 전시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나 음악회와 강연,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결합한 '복합 문화 살롱'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이번 '롱파취화' 그룹전 역시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작품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예술가와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하나의 문화 이벤트로 이어지며, 도심 속 예술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공간은 재미(在美) 건축가 출신의 송정숙 관장이 직접 설계해 최근 완공한 문화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따뜻하고 열린 분위기를 강조한 건축 디자인은 갤러리와 공연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로, 관객이 예술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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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롱파취화(弄波翠華) 제2회 정기 그룹전'에는 김세원 제9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이 초청돼 축사를 통해 전시의 의미를 짚었다.
동아일보 파리특파원을 지낸 문화·예술계 전문가인 김 전 원장은 "서로 다른 여섯 작가의 색채와 삶의 경험이 모여 하나의 파도가 된다는 이번 전시의 메시지가 인상 깊다"며 "각기 다른 화풍과 인생의 결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예술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술은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길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며 작가들의 열정과 연대에 박수를 보냈다. 아울러 신진 작가들에게 흔쾌히 전시 공간을 내어준 송정숙 관장의 문화적 기여에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 참여한 박희열, 서정일, 모니카 오 등 일부 작가들은 이른바 '늦깎이 시니어 작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오랜 삶의 경험과 축적된 감성을 바탕으로 뒤늦게 화단에 뛰어든 이들은 젊은 작가들과는 또 다른 깊이와 서정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시니어 작가들의 등장이 한국 미술의 저변을 넓히는 긍정적인 흐름으로 평가된다. 예술이 반드시 젊은 시절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생의 다양한 시간 속에서 새롭게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김세원 원장등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은 "시니어 작가들의 작품에는 긴 시간 속에서 쌓인 삶의 이야기와 성찰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며 "이러한 경험의 예술이 젊은 세대의 감각적 작품과 만나면 한국 미술계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롱파취화' 그룹전 역시 세대와 배경이 다른 작가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종로의 오래된 골목 속에서 열린 이 작은 전시와 공연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예술은 특정 세대나 특정 시기의 전유물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라는 사실이다.
미술과 음악,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진 이날의 풍경은 예술이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따뜻한 언어임을 조용히 전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