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지기 반성...“결정 못 하는 조직”… KDDX가 드러낸 구조적 병목
드론·국방반도체 취약, 신속획득·R&D로 체질부터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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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넉 달째를 맞은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의 이 한마디는 지금 K-방산의 현실을 압축한다. 방산 수출 150억 달러. 정부는 '세계 4대 방산 강국'을 선언했다.
그러나 현장은 다르다. 속도는 늦고, 규정은 얽혀 있으며, 산업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목표는 '4강'이지만, 시스템은 아직 '예선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청장은 19일 오후 국방기자단 간담회에서 "방산 수출 4강 도약"을 공식 목표로 재확인하며 조직 전반의 '속도전'을 선언했다.
실제로 방사청의 업무 방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출장은 전쟁"이라는 표현처럼, 해외 일정은 더 이상 의전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 어떤 사업을 따낼지, '관철 목표' 중심으로 재편됐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외형'에 그칠 가능성이다. 수출은 20년 만에 70배 성장했지만, 질적 경쟁력은 여전히 불안하다. 방사청 내부에서도 "제도 개선 과제가 촘촘히 쌓여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지금의 성장은 '추격의 결과'일 뿐, '지속 가능한 구조'는 아니라는 얘기다.
△ "결정 못 하는 조직"… KDDX가 드러낸 구조적 병목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 문제는 '지연'이었다. 해군 차세대 구축함(KDDX) 사업은 2년 넘게 표류하며 사업비만 1조 원 이상 늘었다.
업계에서는 "방사청이 규정 뒤에 숨어 결정을 회피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이 청장은 이를 정면으로 인정했다. "수의계약과 경쟁입찰 모두 가능한 상황에서 정책적 판단을 미루며 지연됐다"는 것이다.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의 문제'라는 진단이다.
이 발언은 의미가 크다. 방산 행정의 핵심은 절차가 아니라 '국가 이익을 기준으로 한 선택'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명확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방사청이 그동안 '책임 회피형 조직'으로 작동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청장은 취임 직후 해당 사업을 두 달 만에 정리했다. 늦었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속도가 '일회성'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정착되느냐에 달려 있다.
△ 드론 전쟁 시대… 한국은 아직 '정찰 수준'
전장 환경은 이미 바뀌었다. 드론은 더 이상 보조 전력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군의 드론 체계는 여전히 정찰 중심에 머물러 있다. 공격·요격 능력은 제한적이고, 핵심 부품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이 청장은 "기술보다 구조의 문제"라고 했다. 맞는 진단이다. 부품은 외국에 의존하고, 획득 절차는 느리며, 기업은 군수 시장을 기피한다. 이런 구조에서 '드론 전력화 가속'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방사청이 제시한 해법은 '신속 획득'과 '시제품 전력화'다. 완성품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쓰겠다는 접근이다. 방향은 옳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예산·책임 구조가 없다면 또 하나의 '구호'로 끝날 수 있다.
△ 국방반도체 99% 수입… 4강의 가장 약한 고리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국방 반도체다. 현재 한국 방산의 핵심 부품은 사실상 해외 의존 구조다. 레이더·유도무기·통신체계의 핵심이 외국 기술에 묶여 있다.
이 청장도 이를 "시급한 국가 과제"로 인정했다. 국회와 정부가 입법을 추진 중이고, 범정부 프로젝트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기술 격차는 크고, 산업 생태계는 취약하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한국은 반도체·전자·AI 산업 기반을 갖고 있다. 문제는 '연결'이다. 민수 기술을 군으로 끌어오는 구조, 그리고 장기 투자에 대한 정책적 일관성이 관건이다.
국방 반도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 의지의 시험대'다.
△ 캐나다 잠수함… "기회지만, 아직은 안개"
K-방산 4강의 분수령은 캐나다 잠수함 사업이다. 수십조 원 규모의 이 사업은 단순 수출이 아니라 '글로벌 레벨 인증'에 가깝다.
이 청장은 "추세는 나쁘지 않지만 결과는 모른다"고 했다. 외교·산업·군사 역량을 총동원한 '국가 총력전'이 진행 중이다. 다만 경쟁국 역시 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승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냉정하게 보면, 이 사업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구축되는 산업 협력 모델과 기술 이전 구조가 향후 수출 경쟁력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 "갈아엎을 건 갈아엎겠다"… 말이 아니라 구조여야
이날 간담회에서 방사청은 "지연 사업은 구조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고의 지연에 대한 페널티, 유효 경쟁 미성립 시 반복되는 '무한 루프' 구조 개선 등 제도 개편도 예고했다.
방향은 분명하다. 그러나 방사청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냉정하다. "말은 항상 빨랐고, 시스템은 늘 늦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 청장은 내부에 "몇 월까지 누가 무엇을 할지 명확히 쓰라"고 지시했다. 계획 중심에서 실행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변화가 정착된다면, 방사청은 '조달 기관'에서 '산업 전략 기관'으로 진화할 수 있다.
△ 비판과 기대 사이… 지금이 마지막 기회
K-방산은 지금 분명히 기회를 맞고 있다. 글로벌 안보 불안, NATO 재무장, 중동 긴장 고조.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기회는 길지 않다. 드론, AI, 반도체 중심의 전장 변화는 기존 강자와 신흥 강자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이 흐름을 놓치면 한국은 다시 '중간 국가'로 밀려날 수 있다.
방사청은 비판받아 마땅한 조직이다. 느렸고, 복잡했고, 때로는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가장 중요한 조직이기도 하다. 이 조직이 바뀌지 않으면 K-방산도 바뀌지 않는다.
"4강"은 구호가 아니다. 구조, 속도, 기술, 그리고 결단이 동시에 맞물릴 때만 가능한 결과다.
지금 방사청은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과거의 관성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갈아엎을 것인가.
월드컵 비유대로라면, 이제 막 본선에 오른 단계다.
진짜 경기는 지금부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