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경, 9년 만에 개인전 '안구선사' 전통 도상에 그로테스크·풍자 담은 신작 20여 점 선보여
[국제갤러리] 박찬경_안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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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의 '안구선사'. /국제갤러리
한국의 근대성을 탐구해온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박찬경이 9년 만에 회화 신작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갖는다.
박찬경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5월 10일까지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를 열고 20여 점의 회화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작 가운데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 '안구선사'(2025)다. 이는 한국 사찰 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지선사' 설화를 비튼 작품이다. 원래는 구지선사가 겉멋이 든 동자승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순간 동자승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용이지만 박찬경의 작품 속 동자는 손가락 대신 자신의 눈알을 직접 뽑아 들고 있다. 시각의 과잉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박찬경식 '그로테스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국제갤러리] 박찬경 《안구선사(眼球禪師)》 설치전경_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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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 전경. /국제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박찬경은 스스로의 작업을 "선불교 그로테스크 SF"라 명명했다. 도를 얻기 위해 팔을 자른 혜가의 고사를 그린 '혜가단비도'(2026)나, 화로를 머리에 이고 스승을 찾아간 '혜통선사'(2025) 등 사찰의 전통 도상들이 그의 손끝에서 기묘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했다. "전통은 우리 무의식 속에 살아있는 에너지"라고 말하는 작가는 탱화와 민화, 심지어 만화적 기법을 뒤섞어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을 세차게 흔든다. 1980~1990년대 민중미술이 가졌던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사라진 시대에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빌려 현실을 비춘다.
[국제갤러리] 박찬경 프로필 이미지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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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작가. /국제갤러리
전시장 한편을 채운 '헛수고' 연작은 작가의 수행적 태도를 보여준다. 매일 돌 하나를 그리고 날짜를 기록한 이 작업은 기복 신앙의 돌탑 쌓기를 닮았다. 효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현대 사회에서, 아무런 실질적 이득이 없는 '그림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그는 역설적으로 성찰의 공간을 확보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영상 거장이 왜 이 시점에 회화로 복귀했을까. 박찬경은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에 회화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면서도 "회화라는 오래된 형식을 통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해학과 숭고를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