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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수첩] 전임·후임 검사 집요한 추적…‘단순 사고’ 실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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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훈 기자

승인 : 2026. 03. 29. 18:30

단순 교통사고 기록서 이상한 점 발견
경찰 재수사로 운전자 바꿔치기 결론
후임 검사 보완수사로 범행 전모 밝혀
박상영 형사2부 검사, 오성진 강릉지청 검사 인터뷰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박상영 검사(왼쪽)와 춘천지검 강릉지청 오성원 검사.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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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특정한 운전자와 피해자가 본 운전자가 다른데?"

2024년 4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소속 오성원 검사(변시 12회·현 춘천지검 강릉지청)는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서 두꺼운 사건 기록을 넘기다가 한 문구에 시선이 멈췄다. 수차례 검토한 기록 속에서 경찰의 수사 결과와 어긋난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짧은 진술이었지만, 오 검사에게는 사건의 대전제가 흔들리는 대목처럼 읽혔다.

오 검사가 들여다본 사건은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판단한 불송치한 사건이었다. 2024년 3월 서울의 한 도로에서 차선을 변경하던 차량이 경미한 접촉사고를 냈고, 경찰은 A씨가 "내가 사고 차량을 운전했다"고 주장해 별다른 추가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겉으로 보기엔 형사처벌 필요성이 크지 않은 통상적 교통사고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 검사는 경찰이 넘긴 기록을 다시 살펴보다가 이상한 지점을 발견했다. 피해자 진술서에는 "운전자가 여자였고, 운전자가 조수석을 통해 내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경찰은 이를 충분히 따져보지 않은 채 A씨를 운전자로 특정해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오 검사는 이 대목에서 '운전자 바꿔치기' 가능성을 직감했다.

문제는 오 검사에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 검사는 이미 서울중앙지검 공판부로 인사 이동을 앞두고 있었고,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서 사건을 직접 챙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자칫하면 기록 속 의문이 그대로 묻힐 수 있었지만, 오 검사는 2024년 5월 31일 형사2부 근무 마지막 날, 이 사건에 대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단순 접촉사고로 종결될 뻔했던 사건은 기록 속 어긋난 정황을 놓치지 않은 오 검사의 집요함을 계기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이 사건이 다시 형사2부로 넘어온 날짜는 2025년 6월 30일이었다. 1년 1개월 가까이 지나서 도착한 경찰의 수사 기록은 오 검사의 의심이 적중한 '운전자 바꿔치기'로 결론이 바뀌어 있었다. 진범은 A씨가 아닌 여자 B씨였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8월 형사2부에 새로 배속된 박상영 검사(변시 10회)는 '운전자 바꿔치기' 사건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A씨가 실제 운전자가 아님에도 자신을 운전자라고 진술한 이유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을 좇던 박 검사는 사건 발생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점을 감안해 보완수사 요구가 아닌 직접 보완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A씨가 과거 보험금을 허위로 편취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상영 형사2부 검사, 오성진 강릉지청 검사 인터뷰4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박상영 검사가 지난 27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된 아시아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운전자 바꿔치기'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박 검사는 이 사실을 토대로 A씨를 다시 불러 사실관계를 추궁했고, 결국 A씨는 그날의 진실을 털어놨다. A씨는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B씨를 대신해 사고 처리 비용을 보험금으로 충당하려고 경찰에 허위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보험사에도 같은 취지로 사고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수사 초기 단계부터 자신이 운전한 것처럼 진술을 일관되게 유지했다는 것이다.

전임 오 검사가 포착한 의문을 후임 박 검사가 이어받아 추적한 끝에, 자칫 암장 사건으로 종결될 뻔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린 기록의 빈틈을 놓치지 않은 오 검사는 '운전자 바꿔치기' 가능성을 의심했고, 후임 박 검사는 자신이 운전자라고 주장한 A씨의 범행 동기를 끝까지 파고들어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결국 검찰은 올해 2월 13일 범죄도피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진범 B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피해자와 합의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돼 불송치 결정이 났다.

오 검사는 "피해자가 교통사고 당시 상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운전자가 여자였다고도 분명히 말했다"며 "그런데 어떻게 남성이 운전자로 특정됐는지, 그 경위가 경찰이 보낸 기록에는 드러나 있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여성을 숨겨주기 위해 허위 진술을 했거나, 그 밖의 다른 범죄 혐의가 얽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며 "그래서 그 부분을 확인해 보라는 취지로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건이든 수사기관을 견제하고 통제할 장치는 필요하다"며 "이 사건도 경찰이 워낙 단순한 사고로 보고 종결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진한 부분을 누군가는 짚어내고 보완해야 사건이 비로소 완결성 있게 처리될 수 있다"고 했다.

박 검사는 "이 사건은 검사가 재수사를 요청하고 보완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아무도 모른 채 끝났을 가능성이 컸다"며 "재수사 요청을 계기로 진범이 드러났고, 자칫 암장될 뻔한 사건의 진실도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기 전, 완전히 종결되기 전에 한 차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 역할은 일정한 법률 전문성을 갖춘 검사들이 가장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박상영 형사2부 검사, 오성진 강릉지청 검사 인터뷰6
춘천지검 강릉지청 오성원 검사가 지난 27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된 아시아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운전자 바꿔치기'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정민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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