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시장의 흐름을 가늠하는 봄 아트페어 시즌이 막을 올린다. 올해 아트페어는 판매 중심에서 벗어나 전시의 질과 관람 경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모양새다.
국내 최장수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가 8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2일까지 서울 코엑스 C·D홀에서 열린다. 역대 최대 규모인 169개 회원 화랑이 참여한다. 1979년 '한국화랑협회전'으로 출발한 이 행사는 매년 봄 미술시장 분위기를 읽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
올해 화랑미술제는 단순한 판매의 장을 넘어 '보는 전시'로서의 성격을 한층 강화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형 화랑부터 중견·신생 갤러리까지 폭넓게 참여하며 외연을 확장한 가운데, 한국화랑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은 지난 반세기 한국 화랑과 시장의 흐름을 아카이브로 조망한다.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등 주요 화랑이 참여해 한국 미술의 현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국제갤러리 이현숙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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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랑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전에서 소개되는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 인터뷰 영상. /한국화랑협회
특히 '솔로부스' 섹션의 확대는 이러한 변화의 핵심으로 꼽힌다. 올해는 19개 갤러리가 참여해 한 작가의 작업 세계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PKM갤러리는 조각가 정현을, 가나아트는 문형태, 학고재는 채림, 예화랑은 임직순의 작품을 선보인다. 개별 작가에 대한 심층 조명을 통해 관람의 밀도를 높이며, 기존 '판매 중심' 아트페어에서 '전시형 아트페어'로의 전환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 역시 강화됐다. '줌-인 에디션 7'에서는 약 700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정된 1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후원사인 KB금융그룹은 이 가운데 2명을 선발해 'KB스타상'을 수여하고 협업 기회를 제공한다. 도슨트 프로그램과 토크 콘서트 등 관람객 참여형 프로그램도 확대돼, 관람객이 작품을 '구매 대상'이 아닌 '경험 콘텐츠'로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 전환 역시 관람 경험을 중심에 둔 변화다. 모든 티켓을 모바일 기반으로 운영하고, 온라인 도록과 부스 위치 검색 시스템을 도입해 관람 편의를 높였다. 종이 도록을 대체하는 디지털 환경 구축은 효율성과 함께 관람 동선과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채림, 대지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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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화랑미술제에서 학고재가 선보이는 채림의 '대지'. /화랑미술제
새로운 실험을 내세운 신생 아트페어도 등장했다. 오는 5월 21∼23일 코엑스 마곡에서 열리는 하이브 아트페어는 갤러리 부스비를 전면 폐지하는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비용 부담을 낮추는 대신 전시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판매 구조보다 전시의 질과 관람 경험을 우선시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주최 측은 갤러리들이 보다 실험적이고 완성도 높은 전시를 선보이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육각형 모듈 구조의 부스를 통해 공연장 같은 동선을 구현하는 등 관람 방식 자체를 새롭게 설계한 점도 눈길을 끈다. 다만 수익 구조를 입장권과 부가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한 만큼, 결국 관람객 유입과 콘텐츠 경쟁력이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하이브 아트페어 행사 컨셉 하이브 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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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아트페어 행사 콘셉트. /하이브 아트페어
지역 기반 아트페어 역시 같은 흐름 속에서 진화를 이어간다. 아트부산은 5월 22일부터 24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며, VIP 프리뷰는 21일 진행된다. 2012년 시작된 이 행사는 국내외 주요 갤러리와 컬렉터, 미술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아트페어로 성장해왔다.
아트부산은 매년 아시아 미술 시장의 흐름을 가늠하는 장으로 기능해왔으며, 다양한 갤러리 참여와 교류를 바탕으로 작품 거래와 전시가 함께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부산아트위크'를 통해 도시 전반으로 예술 경험을 확장하는 등 지역성과 결합한 전시 환경을 구축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