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일 아침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본부 직원들이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사 앞에서 퇴직연금 유치전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성인 남성 키를 훌쩍 넘는 배너를 등 뒤에 붙인 채 국민은행 직원들에게 전단지를 돌렸는데, 배너 전면에는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새겨 있었습니다.
전단지 안에는 오는 8일 여의도 야경이 보이는 켄싱턴호텔에서 KB국민은행 임직원을 위한 자산관리 설명회를 열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연금 고객을 위해 최대 15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소식도 담았습니다. 경쟁사 본사 앞에서 직원들을 겨냥한 게릴라 마케팅은 퇴직연금 시장이 얼마나 치열한 각축장이 됐는지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퇴직연금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업계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습니다. 2024년 퇴직연금 현물이전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가입자들이 금융사를 자유롭게 갈아타는 환경이 마련됐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과 다양한 상품을 앞세운 증권사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본격화됐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배너를 메고 현장에 뛰어드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의 이번 행보에는 뚜렷한 전략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증권업계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미래에셋증권(30조985억원), 삼성증권(21조573억원), 한투증권(20조7488억원) 순입니다. 한투로서는 은행권의 두터운 퇴직연금 수요를 한 덩어리라도 끌어온다면 업계 2위 탈환이 충분히 가능한 거리입니다.
KB국민은행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임직원들이 적립한 퇴직연금 규모(사외적립자산의 공정가치)는 2조301억원에 달합니다. 4대 은행 가운데 하나은행(2조1664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한국투자증권 입장에서는 이런 마케팅으로 수백억원짜리 물꼬를 틀 수 있다면 투자 대비 효과가 나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불편하게 바라볼 곳은 두말할 것 없이 KB증권입니다. 같은 KB금융그룹 계열사 직원들이 경쟁사로 퇴직연금을 옮긴다면, 체면과 실속을 동시에 잃는 뼈아픈 결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계열사니까'라는 논리는 직원들의 노후 자금을 붙잡아 두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가입자들은 누가 자신의 노후를 더 잘 지켜줄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집니다. KB증권으로서는 한투의 배너가 마뜩잖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건 왜 집토끼들이 스스로 울타리를 넘으려 하는지 들여다보는 일일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