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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시를 지운다…‘보이지 않는 파리’의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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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4. 08. 14:30

에펠탑마저 소비 이미지로 전복…성곡미술관 '파리 보이지 않는 파리'
51명 작가 참여, 도시의 주변과 기억·시간의 층위 포착
[성곡미술관_Paris Unseen]Martin Parr_마틴파_카피라이트 반드시 표기
마틴 파의 2012년작 '파리, 프랑스(Paris, France)'. ⓒ Martin Parr/Magnum Photos
형광빛에 가까운 강렬한 색채, 번쩍이는 플래시. 화면 속 에펠탑은 더 이상 낭만의 상징이 아니라 기념품 더미 속 하나의 '상품'처럼 소비된다. 이 작품은 성곡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마틴 파의 '파리, 프랑스'다. 익숙한 낭만의 도시 파리를 유머와 아이러니로 비틀어낸 이 한 장의 사진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파리'가 얼마나 만들어진 이미지인가를 정면으로 묻는다.

이처럼 도시의 표면을 뒤집는 시선은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파리 보이지 않는 파리(Paris Unseen)' 전반을 관통한다.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협력 기획자 알랭 사약은 "참여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과 방식으로 파리를 들여다보고 기록했다"며 "익숙한 이미지 너머의 실제적이고 복합적인 도시의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퐁피두센터 전 사진부장을 지낸 그는 프랑스 사진사를 체계화한 대표 큐레이터로, 이번 전시를 통해 '관광지로서의 파리'가 아닌 '살아 있는 도시'로서의 파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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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사약 퐁피두센터 전 사진부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 '파리 보이지 않는 파리'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전혜원 기자
전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관광 도시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파리의 주변부와 경계, 그리고 시간의 층위를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몇몇 작품은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다.

낸시 윌슨-파직의 '드리프터(방랑자)'는 파리 외곽 순환도로의 풍경을 일회용 카메라로 촬영한 뒤, 이를 캔버스 위에 수공 인화 기법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물질적 질감이 강조된 화면은 도시의 변두리를 낯설고도 시적인 이미지로 전환시키며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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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윌슨-파직의 '드리프터(방랑자)' 연작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안-리즈 쇠스의 '장-앙리 파브르 거리, 생투앙' 역시 눈길을 끈다. 밤의 거리에서 수거된 폐기물의 흔적을 강렬한 빛으로 포착해, 도시의 부산물을 마치 발굴된 유물처럼 드러낸다. 인간의 활동이 멈춘 자리에서 또 다른 풍경이 생성되는 순간이다.

국내 작가 구본창의 작업도 인상적이다. 구본창의 '샤스루' 연작은 프랑스 건축물의 출입문 양옆에 설치된 보호 구조물을 촬영한 것으로, 오랜 시간 마차 바퀴와 부딪히며 마모된 표면을 통해 도시의 시간을 드러낸다. 반복된 사용의 흔적이 새겨진 이 작은 구조물은 파리라는 도시가 축적해온 기억의 층위를 조형적으로 환기한다.

사진으로 만나는 파리<YONHAP NO-3948>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 '파리 보이지 않는 파리'에서 한 관람객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전시에 참여한 51명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파리'를 호출한다. 관광 이미지의 클리셰를 해체하는 작업부터, 주변부의 삶과 도시 구조를 탐색하는 시도까지 시선은 다층적으로 교차한다. 결국 이 전시는 파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사는 도시를 되묻게 만든다.

성곡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파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확장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관람객이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보이지 않는 도시'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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