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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설원을 달리던 교실에서 발견하는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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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10. 15:48

<22> 캐나다 클린튼의 '바퀴 달린 학교(CNR School on Wheels) 박물관'
‘바퀴 달린 학교(CNR School on Wheels)박물관’ 전경
캐나다 클린튼의 '바퀴 달린 학교(CNR School on Wheels) 박물관' 전경.
캐나다 온타리오주 클린튼.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곳 한 모퉁이에 햇살에 바랜 초록색 화물 열차 한 칸이 멈춰 서 있다. 이름하여 '바퀴 달린 학교(CNR School on Wheels) 박물관'. 낡은 철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참교육'의 심장 소리를 듣게 된다. 그저 고철 덩어리처럼 보이겠지만, 전 세계 교육자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학교'다.

1920년대 캐나다 북부 온타리오의 겨울 풍경을 상상해 보자. 광활한 원시림과 끝없이 눈 덮인 벌판, 그 사이를 잇는 건 오직 가느다란 철길뿐. 그곳에는 철도 노동자, 사냥꾼, 광부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학교는커녕 이웃집조차 아득히 떨어져 있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문명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캐나다북부철도(CNR)는 이 아이들을 위해 혁신적이지만 눈물겨운 대안을 내놓게 된다. 화물차 내부를 개조한 교실을 기차에 매달아 북부의 간이역마다 배움을 배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학교는 카프리올(Capreol)에서 폴리엣(Foleyet)까지 240㎞ 구간을 오갔다. 이것이 '바퀴 달린 학교'의 시작이었다. 박물관으로 보존된 15089호 차량안으로 들어가면, 좁고 긴 복도를 따라 놓인 작은 책상들, 벽면을 가득 채운 흑판, 구석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물 난로. 그리고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들. 이 좁은 공간이 한때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전부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학교가 전 세계 교육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한 사람, 프레드 슬로먼(Fred Sloman)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1926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39년 동안 흔들리는 기차 칸을 교실이자 집으로 삼았던 그는 이 좁은 화물차에서 아내 셀라와 함께 39년 동안 생활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차량의 절반은 교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슬로먼 가족의 살림집이었다.

바퀴 달린 학교(CNR School on Wheels) 박물관 내부
캐나다 클린튼의 '바퀴 달린 학교(CNR School on Wheels) 박물관' 내부.
당시 '라이프(LIFE)'지가 보도했던 사진 속에는 2층 침대가 쌓인 비좁은 방에서 생활하는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다. 수도가 없어 강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고, 전기가 없어 등유 램프에 의지해야 했던 삶이었다. 침대와 작은 식탁, 최소한의 식기구가 놓인 그 좁은 공간을 보니 뭔가 연신 북받쳐 올랐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월급쟁이 교사가 아니었다. 기차가 간이역에 멈추면, 그는 숲속 어딘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등불을 내걸었고, 아이들은 그 불빛을 보고는 눈보라를 헤치며, 기차로 모여들었다.

일주일 동안 기차는 그 역에 머물며 수업을 진행했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다음 방문 때까지 풀어야 할 과제를 한 보따리씩 안겨주었다. 슬로먼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은 세상에서 잊히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본질임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했다.

박물관에는 요즘의 학교처럼 화려한 멀티미디어 기기도, 안락한 의자도 없다. 하지만 이곳의 교구들은 하나하나가 예술품보다 더 아름답다. 손때 묻은 지구본에는 지금은 사라진 국가의 이름들이 적혀 있고, 낡은 타자기는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두드렸던 희망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벽에 걸린 흑판에는 누군가 분필로 정성스럽게 쓴 문장들이 남아 있다.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

이 좁은 화물칸에서 아이들은 지도 너머의 세상을 꿈꿨고, 슬로먼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난과 고립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었다. 이곳은 교사의 열정과 학생의 갈망이 만나는 그 '접점'이 교육의 전부임을 묵직하게 웅변한다. 클린튼의 이 작은 박물관을 찾는 이들 중에는 유독 현직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100년 전의 낡은 책상 앞에 앉아 한참 동안 창밖을 내다보고는, 방명록에 '내가 왜 교사가 되려 했는지 다시 깨달았다'는 나름 절절한 고백을 남겼을 거라 짐작한다.

기차교실 밖의 슬로먼 선생과 학생들
프레드 슬로먼 선생이 기차교실 밖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는 모습(1927).
현대 교육은 시스템과 평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대한 학교 건물과 최첨단 장비 속에서 오히려 아이들은 소외되고, 교사들은 번-아웃(burn-out)에 시달린다. 그런 우리에게 '바퀴 달린 학교'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교육은 결국 '찾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배움의 기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의 삶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슬로먼 선생은 아이들이 학교에 올 수 없다면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실천했다. 그가 머물던 좁은 침실과 낡은 책상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내어준 '헌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도로가 뚫리고 통학버스가 보급되면서 '바퀴 달린 학교'는 그 소임을 다하고 멈춰 섰다. 하지만 그 학교를 거쳐 간 많은 아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신들의 몫을 해내며 삶의 철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들은 기억한다. 숲속 깊은 곳까지 자신을 찾아와 주었던 초록색 기차와, 환한 미소로 자신들을 기다리며 내걸었던 슬로먼 선생의 등불을.

기차교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
기차교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
클린튼의 '바퀴 달린 학교 박물관'은 단순한 유산이 아닌, 교육의 본질을 잃어가는 우리 시대를 향한 따끔한 일침인 동시에 따뜻한 위로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참교육'의 원형이다. 참교육은 화려한 교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눈을 맞추는 그 찰나의 순간, 서로의 영혼이 연결되는 그 좁은 틈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이곳은 증명하고 있다. 이제 기차는 달리지 않지만, 슬로먼이 지폈던 교육의 불꽃은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들의 가슴속으로 분명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낡은 화물칸에서 발견한 것은 고작 옛 물건들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세상의 모든 교사는 그 길을 기꺼이 찾아가야 한다는 그 위대한 소명. 클린튼의 초록색 기차는 오늘도 말없이 그 진리를 전하고 있다. 오늘, 다 같이 기억해 두자. 가장 귀한 것은 때로 가장 외진 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이 박물관은 현재 슬로먼 기념 공원(Sloman Memorial Park)에 자리해 있으며, 매년 5월 18일 빅토리아데이 주말부터 9월 말까지, 목요일부터 일요일(오전 11시~오후 4시)에만 문을 연다. 입장료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니, 받은 감동만큼 지갑을 열면 된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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