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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주거난 속에서도 다시 커지는 전세 무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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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욱 기자

승인 : 2026. 05. 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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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전세가 참 고마운 제도였는데, 요즘엔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요즘 경제학과 교수들과 만나 가계부채 얘기를 할 때마다 전세 제도에 대한 우려가 빠지지 않습니다. 요지는 전세가 과거와 달리 이제는 '득보다 실'이 커진 제도가 됐다는 것입니다. 최근 전세 매물 부족으로 서민 주거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사뭇 다른 인식인데요. 이 같은 시각을 이해하려면 전세 제도가 어떤 구조적 변화를 겪어왔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계대출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전세 제도의 효용이 무척 컸습니다. 세입자는 저축해둔 목돈으로 매매가보다 낮은 비용에 집을 구할 수 있었고, 집주인은 받은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고금리로 예치해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었죠. 개인이 은행에서 손쉽게 돈을 빌리기 어려웠던 시기에 세입자들은 전세로 주거 수준을 높일 수 있었고, 집주인들은 또 다른 수익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가계대출을 대폭 확대하고 은행 예금금리가 크게 낮아지면서 전세의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임차인은 목돈을 모아 전세금을 마련하기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고, 집주인 역시 보증금을 낮은 금리로 예치하기보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주택 구입 자금으로 쓰거나 투자에 나서는 사례가 늘었죠. 덕분에 전세 제도는 크게 활성화됐지만, 그 이면에는 빚을 내 집을 빌리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부작용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집값 급등과 가계부채 증가입니다. 2012년 약 23조원이었던 전세자금대출은 10년 만인 2022년에 약 170조원까지 불어났습니다. 한정된 주택 공급 속에서 유동성이 단기간에 크게 풀리면서, 전세대출이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신용 리스크도 커졌습니다. 세입자가 대출을 못 갚거나 집주인이 보증금을 떼먹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 피해는 세입자와 집주인에 그치지 않습니다. 은행·보증기관까지 손실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그 규모가 커지면 금융시스템 전반의 부담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과거 갭투자로 인한 전세사기 사태처럼 말이죠.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와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입니다. 주택시장으로 과도하게 흘러드는 유동성을 차단해 부동산 과열을 누그러뜨리고, 동시에 가계부채 누증을 억제하려는 시도로 풀이됩니다. 특히 과도한 가계부채는 이자부담을 키워 민간소비를 위축시키고, 결국 경제성장률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현재 89% 수준인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2030년까지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전세 제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로서의 기능은 유지하고 있는 데다, 무리하게 제도를 손볼 경우 오히려 주거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정부 역시 전세 제도 자체를 전면 개편하기보다는 전세신탁 등 보완 장치를 도입해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는 전세 제도가 국내 금융 시스템의 선진화에 발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개발금융과 기업형 임대업 대출을 활성화해 신규 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방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결국 핵심은 낡은 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고 전세를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도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기 전에, 더 튼튼한 사다리로 바꿔 세울 해법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한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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