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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은 단순한 친선외교가 아니다. 일본이 필리핀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외교, 남중국해 안보, 경제안보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격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빈 접대는 일본 외교에서 상징성이 크다. 천황·황후의 환영행사와 궁중 만찬은 상대국을 단순 협력국이 아니라 장기 전략 파트너로 대우한다는 메시지다. 지난해 3월 브라질 대통령 부부 이후 이뤄지는 국빈 접대라는 점에서도 일본 정부가 필리핀에 부여한 무게가 읽힌다.
◇남중국해가 필리핀 '몸값' 올렸다
일본이 필리핀을 중시하는 첫 번째 이유는 중국 견제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가장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일본은 센카쿠열도 주변 동중국해에서 중국 해경선 활동에 민감하고,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양 진출 압박을 받고 있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안보 언어를 공유한다.
최근 한일·미일 안보 흐름에서도 필리핀의 위치는 커지고 있다. 일본과 필리핀은 2024년 상호파견협정(RAA)에 서명해 자위대와 필리핀군의 공동훈련·상호 방문을 쉽게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고, 이 협정은 2025년 9월 발효됐다. 최근에는 양국이 정보공유 협정 협상에 들어간다는 보도도 나왔다.
군사협력도 이미 가시화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는 이달 초 필리핀 북부에서 미국·호주·필리핀과 함께한 합동훈련에서 대함미사일 실사격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남중국해를 바라보는 지역에서 진행됐고, 일본의 방위장비 이전 논의와도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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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경제안보다. 일본은 필리핀을 ASEAN과의 공급망 재편에 필요한 관문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은 올해 ASEAN 의장국으로서 일본과 ASEAN 경제연계협정(EPA) 재검토 논의의 핵심 상대다. 일본 정부는 중요광물과 에너지의 공동조달, 대체수송, 데이터 유통 규범 등을 EPA 개정 논의에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다카이치 총리가 내세우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군사안보에서 경제안보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일본으로서는 필리핀이 미국 동맹국이자 중국과 해양 갈등을 겪는 나라이고, 동시에 ASEAN 안에서 일본의 공급망 전략을 밀어붙일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이 중요하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황실 의전이라는 부드러운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안보와 경제를 묶은 전략외교에 가깝다.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 한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미 필리핀·호주·ASEAN을 엮어 인도·태평양 안보망을 넓히고 있다. 남중국해는 한국 수출입 물류와 에너지 수송로에도 직결된다. 또 중요광물·에너지 공동조달 논의는 배터리·반도체·자동차 공급망을 가진 한국 기업과도 경쟁·협력 양면에서 연결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을 향한 일본의 국빈 예우는 의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필리핀을 통해 남중국해의 전선을 동중국해와 연결하고, ASEAN 공급망을 경제안보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한국도 필리핀을 단순 동남아 국가가 아니라, 한미일 협력의 외연이 확장되는 전략 접점으로 봐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