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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비만약 한 알’이 쏘아 올린 공…달라지는 식품업계 생존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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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연 기자

승인 : 2026. 05. 28. 17:24

이창연
그동안 식품산업의 성장 공식은 분명했다. 인간의 식욕을 자극해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설탕과 지방, 정제 탄수화물 중심의 가공식품은 강한 맛과 반복 소비를 기반으로 시장을 키워왔다.

하지만 최근 이 공식을 흔드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진원지는 식품 매장이 아닌 제약회사의 연구실이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식품 소비 구조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주사제에 이어 경구용(먹는 약)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시장의 파급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핵심은 식욕 억제다. 복용자들은 이전보다 적은 양을 먹고도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 여러 연구에서는 GLP-1 복용자의 하루 섭취 칼로리가 비복용자 대비 700~900㎉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투자은행들 역시 향후 식료품 지출이 최대 3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다이어트 유행과는 결이 다르다. 식품기업들이 그동안 경쟁 상대를 같은 식품회사에서 찾았다면, 이제는 제약회사가 소비량 자체를 줄이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음식의 맛과 자극에 의해 형성된 소비 습관이 생리적 메커니즘 변화 앞에서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더 먹고 싶다'는 욕구 자체를 덜 느끼게 된다면 식품업계가 오랫동안 활용해온 마케팅 전략과 고열량 중심 제품 경쟁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 등 일부 시장에서는 패스트푸드와 외식업체 방문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식품 기업들은 이미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세계 1위 식품 기업 네슬레를 비롯해 맥도날드, 치폴레 등은 복용자들에게 필요한 단백질과 섬유질 중심의 'GLP-1 친화적' 제품군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한 번에 먹는 양이 줄어드는 소비 패턴에 맞춰 제품 용량은 줄이고 영양 밀도는 높이는 '소형화 전략'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내 식품업계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지금까지 글로벌 K푸드 열풍은 강한 맛과 자극적인 풍미, 높은 열량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라면과 스낵, 치킨 등 대표 제품군 역시 "더 먹고 싶게 만드는 힘"을 경쟁력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GLP-1 확산은 식품산업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식욕 자극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위협으로 평가된다.

물론 비만치료제가 곧바로 식품산업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약가와 부작용, 접근성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변수도 적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산업'이라는 기존 공식이 이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스마트폰이 카메라 산업의 판도를 바꿨듯 바이오 기술 또한 식품산업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제 식품기업들의 경쟁력은 '더 많이 먹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적게 먹어도 선택받는 힘'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창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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