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키우는 귀환여성 43%는 월 27만원 이하로 생계
규모조차 모르는 사각지대, 10년째 민간이 메워
|
지난 11일(현지시간) 코쿤(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 한베함께돌봄센터 사업이 10주년을 맞았다.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헤어진 뒤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온 여성과 그 자녀를 지원해 온 이 센터의 10년은, 한국 사회가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은 '귀환 이후'의 시간과 겹친다. 이 곳에선 그간 한·베 자녀 569명이 법률·체류·국적·가족관계 문제로 상담과 지원을 받았다. 누적 내담자는 6601명이다.
이들 앞에는 두 겹의 벽이 있다. 하나는 신분이고, 다른 하나는 생계다.
◇여권이 끊기면 시작되는 일
첫 번째 벽은 한국 국적자라는 데서 비롯된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면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얻지만, 아버지가 한국인인 경우에는 부모가 혼인신고를 마친 뒤 태어나야 한국 국적을 자동 취득한다. 주민등록번호나 가족관계증명서가 있어도 한국 국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여권이 만료된 뒤 어머니가 갱신 절차를 밟지 못하면, 아이는 한국 여권이 끊기고 베트남에서도 정식 체류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 가정 폭력을 피해 도망치거나, 이혼 후 생계가 막막해진 어머니들이 이 점을 제대로 알고 챙기기란 쉽지 않다.
그 결과는 베트남 제도 안에서의 배제로 이어진다. 한국 국적 아동은 취학 연령 이전에는 베트남 의료보험에 들지 못하고, 학교에 가려 해도 외국인 학생을 받아 본 경험이 드문 일선 학교에서 서류를 더 요구받거나 입학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코쿤이 지난해 귀환결혼이민자의 학령기 자녀 106명을 조사한 결과, 과거에 다녔으나 현재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이 12명, 한 번도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아동이 2명이었다. 체류 신분이 문제가 됐다는 답이 많았다.
규모는 안갯속이다. 한국과 베트남 어느 정부도 전수조사를 한 적이 없다. 재외동포재단은 2000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한·베 자녀 가운데 초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아동이 1만7700명인 점을 근거로 이들 다수가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으로 갔으리라 간접 추정했고, 여성가족부도 베트남 거주 한국 국적 자녀를 1만7000명~2만명으로 추산했다. 다만 여기에는 가정 해체 없이 베트남에 사는 한·베 자녀도 섞여 있다. 이런 추정치마저도 시점·지역마다 제각각이다. 민간이나 개별 연구자가 담당할 수 없는, 양국 정부가 나서야 하는 문제다.
|
신분이 풀려도 끝이 아니다. 두 번째 벽은 생계다. 까마우성 출신 이선영씨는 부모가 이혼했지만 서류에 이름이 제대로 오른 이중국적자다. 체류 걱정이 없어 대학을 택했지만,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끊긴 데다 가족이 진학을 반대했다. 김진수 전 연세대 교수의 장학사업인 유로오스트리아아츠가 4년치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면서 선영씨는 가까스로 독립해 껀터의 한 대학 영어과에 다닌다. 센터가 선영씨를 위해 영어 심화과정을 지원하고, 선영씨도 주말마다 센터를 찾아 한국어를 공부한다. 그는 "센터가 없었다면 대학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나도, 내 꿈도 없었을 것"이라며 "열심히 공부해 사회에 도움이 되고, 도와준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생계의 벽은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더 무겁다. 코쿤이 지난해 귀환결혼이민자 161명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소득이 200만~500만동(약 11만~27만원)인 경우가 43.5%로 가장 많았고, 소득이 없다는 응답도 22.4%였다. 대부분 한부모로 아이를 부양하는 이들이다.
2012년 두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온 류몽뚜옌씨도 그런 어머니다. 한국인 남편과 헤어지고 껀터시 오몬군에 자리 잡은 그는, 한동안 법적 서류와 생계 사이에서 막막한 시간을 보냈다. 2019년 첫째 태경이의 여권을 다시 만들 때는 연락이 닿지 않던 한국인 전남편의 동의 서명이 필요해, 코쿤 센터가 전남편을 찾아 서명을 받고서야 절차가 풀렸다. 2020년에는 지반 침하로 위험해진 집을 대신할 새집을, 코로나19가 극심하던 2021년에는 긴급생계비 300만동(약 16만5000원)을 센터로부터 지원받아 고비를 넘겼다.
뚜옌씨는 2023년 센터의 직업교육으로 네일아트 기술을 익혔다. 스스로 생계를 꾸려 자립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기술을 얻었다고 곧바로 안정된 소득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어서, 자립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째 태경이가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안전한 '재귀환'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학비·기숙사비 등이 전액 지원되는 데다 한국어와 기계·설비·전기 등의 전공기술 능력을 배울 수 있어 뚜옌씨는 "큰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송혜원 코쿤 껀터 한베함께돌봄센터 소장은 10년간 2039명이 자조모임에, 147명이 취·창업 교육에 참여했고 2024년부터는 16세 이상 한·베 자녀까지 지원을 넓혔다고 밝혔다. 직업교육과 자조모임이 자립의 디딤돌이 되지만, 생계가 늘 아슬아슬한 가정에서 그 디딤돌은 쉽게 흔들린다. 센터의 아동들도 다른 외모와 한국식 이름 탓에 현지에선 소수자가 되고, 막상 한국에 가게 되면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 사회를 몰라 또다시 주변으로 밀려나는 이중의 소수자가 될 위험에 처해있다. 한국 국적이라 외국인 지원대상에서도 빠지지만, 기존 다문화 정책의 틀로도 잡히지 않는 이른바 '재귀환'의 길목에 이들을 위한 안내와 지원은 비어있다.
|
그 공백을 메워 온 것은 민간이었다. 코쿤은 2011년 결혼이민예정자 현지 사전교육(PDO)으로 껀터에 사무소를 열었고, 2016년 주호치민 대한민국 총영사관·현대자동차·사랑의열매·껀터시 여성연맹과 함께 껀터시 인민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한베함께돌봄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해 귀환 한·베 가정 301가구를 발굴했고, 결혼 준비부터 귀환 이후 재정착까지 잇는 지원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에 화승락지아, 신한베트남 껀터지점, 한솔섬유 등 베트남 진출 기업들도 후원의 손길을 보냈다. 센터의 사정을 접한 아티산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황종태 대표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고, 호치민시 한인러닝크루 KRBN_HCM는 기부 챌린지 달리기를 통해 마련한 성금을 센터 아이들을 위한 의료비로 쾌척했다.
임아영 코쿤 사무처장은 이 사업을 '이주의 전 주기'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민간이 먼저 필요한 일을 시작하면, 그것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면서 정부 사업으로 넘어간다"며 결혼 사전교육이 정부 사업이 되고 귀환여성 지원에 성평등가족부와 재외동포청이 합류한 과정을 사례로 들었다. 그렇게 결혼 사전교육은 한국 정부가 받아 가 정부 사업으로 추진하고, 한국에 정착한 결혼이민자는 가족센터가 맡았지만, 한국 생활에 실패하고 돌아온 여성과 그 자녀는 어느 기관도 돌보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의 정착만 빼고 나머지를 민간이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신혜수 코쿤 이사장은 "지금은 상품과 자본을 넘어 사람이 이동하는 시대다. 다른 나라가, 다른 사람이 함께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사는 사회가 된다"면서 "한국 남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들은 한국 국적자이고, 그 여성과 자녀를 돕는 것이 결국 우리나라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사무처장은 돌아온 여성과 아이들의 안정적 정착을 돕는 일이 결국 한국 사회가 앞으로 떠안게 될 부담을 더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속가능성은 센터 자신의 과제이기도 하다.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던 현대차의 지원이 2028년 종료되고, 재외동포재단 사업으로 생활비를 보태 왔지만 센터는 생존과 활동 사이를 오간다. 코쿤은 다음 10년 과제로 양국을 잇는 인재 양성, 귀환여성의 사회 정착, 중증 장애 아동 의료 안전망, 지역사회 협력과 함께 '지속 가능한 현지 자립형 지원체계'를 꼽았다. 임 사무처장은 이 구상이 "민간의 힘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재외동포청의 예산 확대와 더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