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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은 종전 양해각서 체결로 1라운드를 마친 뒤, 휴전 합의가 물거품이 되면서 이제 2라운드로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략은 1라운드의 그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아 보인다.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과 군사시설 파괴를 지속하면서 확전의 위협을 가함으로써 이란을 다시 협상장으로 끌어내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공격하면 이란의 교량과 발전소를 폭격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 그리고 이에 대한 국제법 위반 논란도 1라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의 출구를 찾지 못한 미국이 최후의 수단으로 지상군 투입과 전면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지상군 투입을 결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는 단순히 군사적 부담 때문이 아니라 트럼피즘의 정치적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상군 투입은 이란 전쟁의 장기화라는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며, 트럼프가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해 온 '끝없는 전쟁(forever wars)'을 재현하게 된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며 네오콘 노선과 결별했고, 이를 계기로 공화당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전 행정부들이 중동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막대한 국력과 재정을 소모했다는 그의 비판은 미국 노동자층의 공감을 얻었고, 이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트럼프식 고립주의 외교정책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지상군 투입은 단순한 군사적 선택이 아니라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스스로 허무는 결정이 될 수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의 지지층조차 더 이상 납득시킬 수 있는 대안이 남아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대규모 군사공격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이란이 이를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란은 미국의 중동 동맹·우방국과 미군 기지들을 겨냥한 미사일·드론 공격을 계속하는 한편, 예멘 후티 반군을 동원해 전선을 홍해까지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돼 국제유가와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다시 급등할 경우,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결국 휴전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1라운드의 학습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트럼프가 이러한 이란의 인식을 뒤집을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이란의 공격으로 미군 전사자가 계속 늘어날 경우 트럼프는 원하든 원치 않든 확전의 위협을 거둬들일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지상군 투입과 같은 전면전은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결국 트럼프는 승리의 서사를 지키기 위해 확전의 위협은 유지해야 하지만, 트럼피즘의 자기부정을 의미하는 전면전은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갇혀 있다. 그 결과 휴전도 전면전도 아닌 출구 없는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교착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란과의 재협상이 불가피하다. 이란 전쟁에 대한 트럼프 지지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고, 공화당 내에서도 중간선거 전에 전쟁을 빨리 마무리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재협상을 위한 물밑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문제에서 미국이 일정 부분 양보하지 않는 한 이란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란은 종전 양해각서의 해협 재개방 조항이 해협 통항에 대한 결정권을 자국에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 미국은 이를 완전한 해협 재개방을 보장한 합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양측의 상반된 해석이 휴전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만큼,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려면 미국도 최소한 '완전한 해협 재개방'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일정 부분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정치외교적 승리의 서사에 집착하는 트럼프로서는 이를 만회할 새로운 승리의 선언이 필요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들에 화물 가치의 20%를 통항료로 징수하겠다는 발상과, 그 대안으로 제시된 중동 국가들과의 대규모 무역·투자 협정은 흔들린 승리의 서사를 단기간에 복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무역법 301조에 따라 지난 24일부터 60개 교역 상대국에 부과된 관세는 전쟁의 성과와 무관하게 미국이 다시 주도권을 되찾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국내에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군사적 승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경제와 통상에서 미국의 이익을 되찾고 외국에 더 큰 부담을 지웠다는 새로운 승리의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도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서는 안보와 통상이 별개의 의제가 아니라 하나의 협상 패키지로 결합될 수 있으며, 관세와 투자, 방위비 분담이 모두 미국의 '승리의 서사'를 구성하는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김연호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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